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그림자 살인

울프팩 2009. 4. 11. 18:20
탐정물의 재미는 수수께끼 풀이와 일맥 상통한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뇌 플레이는 곧 제작진과 관객의 싸움이다.

한국의 탐정물을 표방한 박대민 감독의 '그림자 살인'은 그런 점에서 절반의 성공이다.
구한말을 배경으로 연쇄살인의 비밀을 푸는 탐정(황정민)과 그 일행(류덕환, 엄지원)의 활약을 다룬 스토리는 치밀했지만 관객과의 게임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선이 적절하게 스며들어간 이야기는 나름대로 탄탄해서 끝까지 영화를 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종반으로 치달을 수록 사건의 해결 과정이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한다.

이유는 한가지, 추리극의 기본 원칙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추리극은 초반에 제시된 인물들 속에서 범인이 등장하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다.

결코 독자나 관객이 모르는 제 3의 존재가 불쑥 튀어나오거나 천재지변 같은 우연으로 사건이 해결되서는 안된다.
난데없이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는 신, 즉 고대 희랍의 데우스 엑스 머시나 같은 존재를 허락치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과연 추리극의 불문율에 공정했는 지 의문이다.
등 뒤에 늘어진 검은 천이 망토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날개였다는 식의 트릭은 결코 추리극에서 용납이 안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결정적인 트릭이 존재한다.
그렇다보니 사건 해결 과정이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구한말이라는 시대 배경을 선택한 것도 치밀하지 못한 과학적 사고를 덮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그런대로 볼 만 하다.
'유주얼 서스펙트'나 '아이덴티티'처럼 감탄이 터지거나 숨막히는 서스펜스를 유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엉터리 소리는 나오지 않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엄지원이 연기한 여성 캐릭터의 활용도가 낮다는 점이다.
이렇다할 활약도 없고 한 발 쉬어가는 로맨스를 제공하는 존재도 아니라면 굳이 왜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가는 캐릭터이다.

초반 '본 얼티메이텀'이나 '007 카지노로얄'을 연상케 하는 스피디한 추격 장면 등이 인상적이며, 소재도 독특한 점이 돋보인다.
그러나 고도의 두뇌 플레이를 즐기기에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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