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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 (블루레이)

울프팩 2014. 4. 1. 11:26

"길다!"

남자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한 여인이 머리를 크게 제끼며 돌아본다.

 

바로 그 순간 대중문화의 또다른 역사가 시작됐다.

리타 헤이워드가 물결처럼 굽이치는 긴 머리를 넘기는 동작은 이후 숱한 광고와 영화 등에서 모방하며 섹스어필의 상징이 됐다.

 

그 뿐만이 아니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도둑'에서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붙이는 영화 포스터와 데이빗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잠깐 등장하는 영화 포스터 역시 '길다'의 포스터이다.

 

그리고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감방 벽에 붙여 놓은 최초의 사진도 '길다'로 핀업 걸의 상징이 된 리타 헤이워드였다.

그만큼 찰스 비더 감독의 영화 '길다'(Gilda, 1946년)는 각종 대중문화가 흉내낸 영화였고, 숱한 영화 속에 반복해서 인용된 영화가 찬양한 영화였다.

 

이 작품의 매력은 단연 리타 헤이워드다.

그의 상징이 된 굽이치는 긴 머리와 긴 다리를 뽐내며 관능적인 동작으로 춤을 추는 모습은 이 작품을 찬란하게 빛나도록 만들었다.

 

리타 헤이워드는 이 작품을 통해 1950년대 마릴린 먼로가 등장하기 전까지 확실한 섹스심벌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바즈 루어만 감독도 이 작품에 등장한 그를 가리켜 최고의 글래머스타(sex bomb)로 칭송했다.

 

하지만 작품 속 리타 헤이워드의 모습은 철저하게 만들어진 모습이다.

원래 스페인 댄서의 딸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춤을 배워 아버지와 함께 8세때부터 무대에 섰다.

 

'길다'에서 보여준 탁월한 춤 솜씨는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것이다.

이후 마이너 영화 등에 출연하다가 컬럼비아영화사 사장 해리 콘에 눈에 띄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해리 콘은 철저하게 그를 글래머스타로 '만들었다.'

콘 사장은 우선 마르가리타 카르멘 칸지노라는 무뚝뚝한 이름을 미국식인 리타 헤이워드로 고쳤고, 모근을 제거하는 전기분해요법으로 이마가 넓어 보이도록 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타고난 검은 머리를 붉은색으로 염색해 조명을 받았을 때 은은하게 빛나도록 한 점이었다.

이는 '길다'에서 보면 마치 그의 머리 주위로 후광이 빛나는 듯한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어찌보면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 리타 헤이워드는 해리 콘 사장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해리 콘 사장은 수 개월에 걸쳐 리타 헤이워드에게 직접 노래를 부르도록 하기 위해 보이스 레슨까지 시켰으나 이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마저 성공했더라면 리타 헤이워드는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섹시스타가 됐을 것이다.

'길다'는 바로 해리 콘 사장이 공들여 창조한 리타 헤이워드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빛난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리타 헤이워드를 위한, 리타 헤이워드가 빛낸, 리타 헤이워드의 영화다.

 

해리 콘 사장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작품에 기여했다면, 찰스 비더 감독은 보이는 곳에서 이 작품을 완성한 지휘자다.

비더 감독은 제 2 차 세계대전후 미국에 새롭게 불기 시작한 필름 느와르 장르의 바람을 타고 이 작품에 '말타의 매'처럼 스릴러와 블랙코미디의 요소를 도입했다.

 

전문 도박사에서 하루 아침에 카지노사장이 되었다가 옛사랑에 괴로워하는 뜨거운 열혈남으로 변해가는 주인공 조니(글렌 포드)는 전형적인 안티히어로다.

여기에 그림자를 이용해 위압적이고 음험한 모습을 부각시킨 영상, 누드없이 누디티 이상의 성적 매력을 지닌 유명한 장갑 스트립쇼 장면, 뮤지컬 요소를 도입해 리타 헤이워드의 춤과 노래 장면을 고스란히 살린 장면 등은 이 작품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했다.

 

그만큼 비더 감독이 공들여 만든 영상과 음모가 뒤섞인 스토리가 없었다면 리타 헤이워드의 매력이 빛을 발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다시봐도 약 70년전 영화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영화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고전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품격과 마력을 지녔다.

 

이 작품은 4 대 3 풀스크린의 흑백영상이어서 HD마스터링 효과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특히 리마스터링이 잘 된 '카사블랑카'와 비교하면 화질이 많이 떨어지는데, 68년 전 작품인만큼 필름 입자감이 두드러지고 지글거림이 보이는 것은 감수해야 할 듯.

 

그럼에도 클로즈업의 디테일이 좋고 명암대비 효과가 확실하게 살아 있다.

음향은 모노를 지원하며, 부록으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바즈 루어만 감독의 설명 영상이 들어 있는데 아쉽게도 영어자막만 지원한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스타 탄생의 순간. 남편이 이름을 부르자 숙였던 고개를 크게 제치며 밝게 빛나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이 장면은 리타 헤이워드가 대중을 사로잡은 마력의 시간이었다. 이 장면은 스틸이 아닌 연속장면으로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주인공을 맡은 글렌 포드는 이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고, 1955년 '폭력교실'로 스타가 됐다. 1916년 캐나다에서 태어났으며 2006년 사망했다. 생전에 네 번 결혼했으며 네 번 이혼했다. 

이 영화는 제 2차 세계대전 후 부상한 필름느와르 장르의 정점에 선 영화다. 스타일리쉬하면서 직설적인 감정 표현이 특징. 특히 글렌 포드가 연기한 주인공은 거칠면서도 영웅의 면모를 지닌 안티히어로로 나온다. 

리타 헤이워드가 길게 뻗은 각선미와 어깨위로 출렁이는 머리를 늘어뜨린채 'Put The Blame On Mame'을 부르는 장면. 그는 이 영화에서 립싱크를 했고 노래는 아니타 엘리스가 모두 불렀다. 컬럼비아영화사의 해리 콘 사장은 헤이워드에게 몇 달 동안 보이스 레슨을 시켰으나 잘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불렀다. 

1918년 뉴욕에서 태어난 리타 헤이워드는 원래 수줍어하고 조용한 성격이나 카메라가 돌아가면 폭발적인 성적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타고난 배우였다. 1970년대 말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9년 동안 투병하다가 1987년 68세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림자를 이용해 상대의 음험하고 음모적 성격을 부각시키는 장면은 히치콕 영화를 연상케 한다. 작품 제작 당시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여서 카지노 사장을 독일인으로 설정해 나찌에 대한 감정을 표출했다. 

군인과 죄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핀업걸이었던 리타 헤이워드는 여러 번 결혼했다. 19세때 처음 결혼했다가 1943년 이혼했으며, 당시 약혼자였던 빅터 마추어가 군대 간 사이 오손 웰즈 감독의 적극적인 구애에 넘어가 그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리타 헤이워드는 오손 웰즈가 만든 '상하이에서 온 여인'에 출연하며 상징이던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금발로 염색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변신이 무색하게 1948년 오손 웰즈와 이혼한 뒤 이듬해 사우디 왕자 알리 칸과 결혼하면서 할리우드 출신의 첫 번째 왕녀가 됐다. 알리 칸과는 53년 이혼한 뒤 배우 딕 헤임스와 네 번째 결혼을, 1958년 제임스 힐과 다섯 번째 결혼을 했다가 3년 만에 이혼하고 이후 혼자 살았다. 

이 영화는 이보다 앞서 만든 '카사블랑카'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드러나지 않은 과거를 지닌 채 국경 마을에 살며 쫓기는 사람들, 그리고 비행기 탈출과 매력적인 여성의 이중적인 사랑관계 등이 닮았다. 

리타 헤이워드가 살짝 살짝 다리를 드러내며 '아모레 미오'를 부르는 장면도 대단히 관능적이다. 촬영은 루돌프 마테가 맡았다. 

리타 헤이워드가 번갈아 가며 글렌 포드의 뺨을 세게 때리는 장면에서 실제로 헤이워드가 너무 세게 때려 글렌 포드의 이빨 2대가 부러졌다. 글렌 포드는 촬영이 끝날때까지 참았다고 한다.

'Put The Blame On Mame'을 부르며 긴 팔 장갑을 벗어내리는 유명한 장갑 스트립 장면. 바즈 루어만 감독은 나중에 '물랑루즈'에서 니컬 키드먼의 머리 모양을 리타 헤이워드를 흉내내 물결치는 붉은 머리로 표현했다. 

찰스 비더 감독은 경력이 독특한 인물이다. 1900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제 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보병중위로 참전했다. 전후 독일영화사에서 편집자 및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1924년 미국으로 이민가서 브로드웨이에서 코러스 가수로 일했다. 이후 단편영화를 만들다가 MGM과 계약하며 감독이 됐다. 워너브라더스 사장 해리 워너의 딸 도리스 워너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길다
리타 헤이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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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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