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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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다 스미스

울프팩 2012. 1. 21. 12:33

지금도 스티브 맥퀸의 죽음은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즐겨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암이었다.
혹자는 레이싱을 즐겼던 그가 석면으로 채운 옷을 자주 입어 폐암에 걸렸다고 했고, 누구는 1950년대 미국이 핵실험을 한 사막에서 서부극을 촬영한 탓이라고 했다.

어쨌든 영원한 '빠삐용'인 그는 1980년, 한창 나이인 50세때 멕시코에서 세상을 떴다.
워낙 좋아했던 배우여서 지금도 그가 나오는 영화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헨리 해서웨이 감독의 '네바다 스미스'(Nevada Smith, 1966년)는 그의 힘들었던 인생을 닮은 서부극이다.
주인공 맥스(스티브 맥퀸)가 부모를 잔혹하게 죽인 악당 3인조를 없애기 위해 집요한 복수를 펼치는 내용.

스티브 맥퀸은 워낙 가난해 15세때 가출해 맥스처럼 떠돌이 생활을 한다.
자잘한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을 들락거렸고, 막노동과 날품팔이로 연명하다가 해병대에 입대해 하사관으로 제대했다.

뉴욕 액터즈스튜디오에서 연기 공부를 한 뒤 배우가 된 그는 '황야의 7인' '대탈주' '불리트' '신시내티 키드' '타워링' '빠삐용' 등 대작들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네바다 스미스'는 그의 출연작 가운데 썩 훌륭한 작품은 아니지만 독특한 구조를 가진 서부극이다.

부모를 잃은 고아가 은인의 도움으로 총솜씨를 갈고 닦아 원수를 갚은 내용은 기존 서부극과 달리 중국 무협영화의 틀을 닮았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여자를 이용하기도 하고, 교묘히 함정을 파기도 하는 등 무조건 정의롭기만 한 단선적 서부극의 주인공들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주인공 맥스가 인디언과 백인의 혼혈이라는 설정도 일반적인 서부극과 다르다.
복수의 허망함을 전하며 길을 떠나는 주인공은 마치 '세인'을 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무협지와 정통 서부극을 섞은 칵테일이다.
요란한 총격전보다 탄탄한 드라마로 승부하는 서부극으로, 무엇보다 맥퀸의 고독한 얼굴을 볼 수 있어 좋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참으로 실망스럽다.
계단 현상에 윤곽선은 뭉개지고 색감도 떨어진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아아, 스티브 맥퀸. 1930년 생, 1980년 몰.
스파게티웨스턴이 아닌 정통 서부극치고는 이야기가 잔혹하다. 인디언 여인의 피부를 벗기는 악당들.
서부극의 특징인 광활한 자연을 와이드앵글로 잘 보여준다. 주로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주 경계에 있는 인요카운티와 오웬 계곡에서 촬영.
원작은 해롤드 로빈슨의 소설 '위대한 야망'. 1975년 고든 더글라스 감독이 TV용 영화로 리메이크했다.
해서웨이 감독은 인물을 대척점에 배치하는 등 정통적인 서부극 앵글을 즐겨 사용했다. 주인공 맥스는 수감된 원수를 죽이기 위해 일부러 은행강도짓을 벌여 감옥으로 간다.
주로 서부극을 즐겨 만든 해서웨이 감독은 급한 성격과 독선적인 연출 스타일로 악명 높았다.
해서웨이 감독 자신도 무성영화 시절 서부극에 자주 출연한 배우였으며, 2011년 개봉한 '더 브레이브'의 원작으로 존 웨인이 주연한 '진정한 용기', 마릴린 먼로가 나온 '나이아가라' 등을 연출했다.
"탄피를 주워. 1개에 1.5센트야." 이 영화는 독특한 대사가 여러 군데 나온다.
제목은 악당을 속이기 위해 주인공 맥스가 가짜로 둘러대는 이름이다. 포스터를 보면 윗통을 벗은 맥퀸이 복근을 드러낸 채 장총을 메고 있는데, 실제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하느님의 인도를 거부하던 주인공은 막판에 불현 듯 복수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