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울프팩 2008. 3. 2. 20:25

에단과 조엘 코엔 형제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듯 극단적 허무로 치닫는다.
등장인물들은 죽기 살기로 돈을 위해 목숨을 걸고 덤비지만 그 누구도 돈을 손에 넣지 못하고 빈털털이로 돌아선다.

그렇기에 돈을 향한 집착이 빚어내는 광기가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무섭고 때로는 어이없는 웃음을 유발한다.
'밀러스 크로싱' '파고' '레이디킬러'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등 코엔 형제의 전작들이 대부분 그렇다.

굳이 그 안에서 차이를 둔다면 '레이디 킬러' '위대한 레보스키' '오 형제여 어디있는가'처럼 웃음에 치우친 부류와 '밀러스 크로싱' '파고' 등 스릴러에 무게를 둔 부류가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후자 쪽이다.

이유없는 사이코 패스(하비에르 바르뎀)가 돈다발이 가득 든 가방을 쫓아 연쇄살인을 벌인다.
우연히 가방을 줏은 사내(조쉬 브롤린)는 졸지에 사냥감이 된다.
그 두 사람을 은퇴를 얼마 앞둔 늙은 보안관(토미 리 존스)이 기다린다.

광기와 우연이 빚은 역사 앞에 관록과 경륜은 사막의 모래먼지처럼 흩날린다.
힘들게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미국의 올드 세대들이 신세대의 광기 앞에서 속수무책인 오늘의 미국을 풍자하는 듯하다.

은퇴후 마땅한 소일거리조차 없는 노인처럼 자본주의의 병폐로 곪을대로 곪은 미국의 미래는 갑갑하기만 하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미국인들에게 섬뜩한 스릴러이면서 정곡을 찌른 비판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파고'처럼 코엔의 블랙유머를 기대했다면 거리가 있다.
유머라고는 전혀 없어 건조하기 그지없는 코엔 형제식의 허무한 느와르인 '밀로스 크로싱'이 마음에 안들었다면 이 작품 또한 답답할 수 밖에 없다.

다소 늘어지는 이야기이지만 잔혹한 살인마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낮게 깔리는 목소리와 무시무시한 산소탱크를 개조한 무기는 공포 그 자체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을 만한 연기력이다.
다만 산소탱크 무기는 모방범죄가 나올까봐 걱정스럽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감독, 작품, 각색, 남우조연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어지만 손가락을 치켜들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코엔형제의 묵직한 메시지가 앙금처럼 오래오래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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