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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4K)

울프팩 2021. 8. 22. 10:15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4년)는 냉전시대의 핵전쟁 위험을 둘러싸고 집단적 광기에 빠진 사람들이 빚어내는 웃지 못할 일을 다룬 블랙코미디다.
큐브릭 감독은 쿠바 위기 등 극한의 핵무기 경쟁으로 치닫던 당시 시대 상황을 미치광이 같은 권력자들의 모습을 통해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

내용은 공산주의의 확산과 침투를 우려한 미 공군 전략사령부의 장군이 구 소련에 선제적 핵 공격 명령을 내리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지금은 여러 가지 보안 장치를 갖췄다고는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세상인 만큼 최종 명령권자가 비정상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까지 막을 방법은 없다.

영화에서 끔찍한 것은 전쟁 미치광이의 도발적 명령보다 그런 결정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급기야 명령을 철회하려고 해도 이마저 봉쇄되면 인류가 파멸하는 핵전쟁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 더 무섭다.

풍자적인 내용도 내용이지만 눈에 띄는 것은 피터 샐러스(Peter Sellers)의 1인 3역이다.
영화 '핑크 팬더' 시리즈로 유명한 샐러스는 코미디 연기에 능숙한 달인답게 미국 대통령, 영국 공군 장교, 전 나치 출신의 무기 개발 자문관 등 3가지 배역을 제각기 다른 연기와 목소리로 그럴듯하게 해냈다.

원래 B52 전략 폭격기 조종사까지 1인 4역을 맡았는데 너무 힘들다는 주변의 만류와 촬영 중 발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조종사 역할을 다른 배우에게 넘겼다.
더불어 극우 논리에 사로잡힌 장성을 맡은 조지 C 스콧(George Campbell Scott)과 전쟁을 일으키는 광적인 장성을 연기한 스털링 헤이든(Sterling Hayden)의 연기도 훌륭했다.

두 사람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뒷받침한 덕분에 피터 샐러스의 연기가 빛이 났다.
아울러 타이트한 클로즈업과 다양한 앵글로 인물들의 성격을 부각하고 매 순간 극적 긴장감을 돋보이게 만든 큐브릭 감독의 연출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황당한 상황과 대사 속에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유머러스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큐브릭 감독의 뛰어난 연출 덕이다.
여기에 핵폭발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선율 등 여러 면에서 범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훌륭한 반전 영화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1.66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디더링은 있지만 특별한 필름 손상 흔적이나 잡티가 보이지 않을 만큼 잘 복원됐다.
하지만 흑백 영상이어서 과거 블루레이 화질과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음향은 DTS HD MA 5.1 채널로 수록됐지만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요란한 전쟁 블록버스터가 아닌 워룸에서 벌어지는 대사 비중이 큰 작품이어서 음향 효과를 강조할 만한 장면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록으로 냉전 시대 핵전쟁 에피소드, 제작과정, 피터 셀러스의 연기, 큐브릭 감독의 예술, 로버트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 인터뷰, 피터 셀러스와 조지 스콧의 분할 화면 인터뷰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부록 중 맥나마라 인터뷰에 들어간 한글 자막에서 '염두에 두고'를 '염두해 두고'로 표기한 오자가 보인다.

아쉬운 것은 과거 DVD 타이틀에 들어 있던 삭제된 엔딩 부록이 빠진 점이다.
제작 과정에 삭제된 내용이 나오기는 하지만 제대로 편집된 영상을 볼 수 있는 부록이 빠져 아쉽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큐브릭 감독은 인물들을 극단적인 앙각 촬영으로 위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큐브릭은 전쟁 미치광이인 리퍼 장군 역할로 은퇴한 배우 스털링 헤이든을 설득해 출연하도록 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B52 전략 폭격기. 당시 B52는 핵무기를 싣고 24시간 대기했다.
제작진은 영국 런던의 셰퍼튼 스튜디오에 길이 40m, 폭 30m, 높이 10m의 전시상황실 세트를 만들고 여기에 직경 7m 원탁을 배치했다.
패튼 장군을 열연했던 조지 C 스콧이 출연. 스콧이 연기한 캐릭터는 당시 반공산주의에 광신적으로 몰두해 논란이 많았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을 모델로 했다.
영화 속 핵전쟁은 허무하게도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의 수돗물에 독을 풀지 모른다는 미치광이 장군의 망상에서 비롯됐다.
1인 3역을 연기한 피터 샐러스는 원래 폭격기 조종사까지 1인 4역을 맡았으나 폭격기의 폭탄창 개방 장면을 찍다가 떨어져 발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조종사 역할을 다른 배우가 하게 됐다.
피터 샐러스는 미국 대통령 역할에서는 억양과 목소리까지 바꿨다. 샐러스는 각본의 첫 대사만 그대로 하고 나머지는 모두 즉흥 연기를 했다.
폭격기의 폭격수로 나온 제임스 얼 존스는 이 영화로 스크린 데뷔했다.
조종사가 핵폭탄을 타고 떨어지는 장면은 큐브릭 감독의 아이디어다. 큐브릭은 영화 '로리타'를 끝내고 핵전쟁 위험을 늘 염려해 이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했다. 관련 서적만 50권을 읽은 큐브릭은 친구가 추천한 피터 조지의 소설 '적색 경보' 등을 참고해 각본을 공동으로 썼다.
피터 샐러스가 전 나치 과학자를 연기하며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도 즉흥연기였다. 큐브릭 감독은 처음에 진지한 드라마로 영화를 찍으려고 했으나 갑자기 파격적인 코미디로 대본을 고쳤다.
원래 엔딩은 워룸에 모인 사람들이 아이들 눈싸움하듯 크림파이를 던지며 난장판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1963년 11월22일로 잡힌 개봉일을 앞두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개봉일이 이듬해 1월30일로 연기됐고 크림파이 장면도 삭제됐다. 엔딩에서 조지 스콧은 크림파이를 맞은 대통령을 가리키며 "방금 대통령이 서거하셨습니다"라는 대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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