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여행

비에 젖은 두브로브니크

울프팩 2012. 4. 16. 17:53
"안녕하세요?"
우산을 받쳐들고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반제해변에서 플로체 게이트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젊은 남녀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신혼여행을 온 한국 부부였다.

하필 신혼여행을 왔는데 비가 와서 어떡하냐고 걱정했더니, "괜찮아요, 그래도 좋아요"라는 대답이 돌아 왔다.
생각해보니, 그들의 말이 맞다.

비가 온다고 투덜댔는데 그럴게 아니라, 비 오는 두브로브니크를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고 나니 비 오는 거리가 달리 보였다.

스트라둔 대로는 빗물에 젖어 더욱 더 거울처럼 반짝 거렸고, 그 많던 사람들도 많이 줄어 사진을 여유있게 찍을 수 있었다.
모든 건물, 거리, 풍경 등이 그렇게 젖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생활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거리 카페와 상점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아 걸었다.

부자카페도 아예 문을 닫았고, 일부 노천카페들은 테이블을 모두 치웠다.
두브로브니크의 명물 아이스크림 가게도 손님이 별로 없다.

그들만 그런게 아니다.
우산을 준비해 가지 않아 비를 쫄딱 맞았더니 보통 추운게 아니다.

뼈속 깊이 파고드는 한기에 더 이상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비올 때 성벽 투어는 위험하다.

물에 젖은 돌이 그대로 얼음장이 되기 때문.
일행 중에도 몇 번이나 미끄러진 사람들이 있다.

참고로, 래디슨 블루 리조트는 최악이다.
시설만 좋을 뿐 올드타운에서 너무 멀어 움직이기 쉽지 않다.

자동차로 30분 거리인데, 호텔에서 운영하는 무료 셔틀버스는 오전 10시와 오후 1시 딱 두 번만 운행한다.
심지어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시간에 올드타운에 가려면 200쿠나를 내고 호텔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전세택시를 타야 한다.
무료 셔틀을 2회로 제한한 것도 전세택시로 돈을 벌려는 장삿속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 4월의 두브로브니크는 일주일 내내 비가 오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우기다.
두브로브니크를 여러번 다녀봐서 일부러 우기가 어떤지 체험하고 싶은게 아니라면 11~4월의 비수기는 피하는게 좋다.

자톤에서 올드타운으로 향하는 길에 바라본 보빈쿡 풍경. 마침 유람선이 두 척 정박해 있었다.

지난해 여름에 본 거리의 악사. 옷차림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날이 흐려 그런지 이날은 아예 악기를 꺼내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이스크림을 먹다말고 미소를 짓는다.

날이 흐린데도 금요일어어서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군들리체바 광장에도 노점상들이 몇몇 나왔다. 그 중 특이한 것이 개구리였다. 입에 물고 있는 막대를 뽑아 등에 솟은 돌기를 득득 긁어주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났다.

로크럼 부두도 비온다는 일기예보에 배들이 많이 나와 있지 않다. 일주일 내내 비 예보였다.

한두 방울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반제 해변까지 갔다. 여름축제 기간 붐벼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던 이 곳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 역시 휴양지는 사람이 붐벼야 재밌다. 이곳에서 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신혼부부를 만났다.

비가 내리니 으슬으슬 한기가 몰려온다. 스트라둔 대로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도 우산을 펴들고 빠르게 빠져나갔다.

비가 내리니 렌즈에도 빗물이 묻어 사진찍기가 힘들었다. 비오는데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은 빨래를 걷어들이지 않는다. 희한한 풍경이다. 비에 젖은 채 놔두려면 뭣하러 빨래를 하는 지 모를 일이다.

 그나마 성의 남쪽은 성벽이 낮고 볕이 반짝 들어 빨래 널기 좋지만 성벽이 높은 북쪽은 해도 잘 들지 않고 공간도 좁아 빨래 널기 쉽지 않을 듯 싶다.

저녁 장소였던 타베르나 아스널. 시계탑 아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먹물리조또와 그리스식 오징어튀김인 깔라마리가 아주 맛있다. 그런데 저녁을 먹는 내내 너무 추워 혼났다. 실내는 괜찮지만 테라스는 바람이 그대로 몰아쳐 한겨울이었다.

바닥에 물이 고일 만큼 비가 쏟아지니 대리석 바닥은 더욱 반짝였다. 비에 젖은 대리석 바닥 위로 가로등 불빛이 고흐의 그림처럼 일렁이는 풍경이 일품이다.

지난해 여름축제때 들려서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 홀딱 반했던 두브로브니크 최고의 식당인 루신칸툰. 여름 축제기간에는 골목을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노천 테이블이 꽉 차고,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는데 비가 오니 실내에서만 손님을 받는다.

다음날도 내내 비가오다가 저녁에 겨우 그쳤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플로체 게이트 앞으로 옮겼다. 구름과 햇살의 조화가 빚어낸 풍경이 또한 장관이다.

멀리 로크럼 부둣가 타베르나 아스널 식당 뒤로 성모승천 성당의 종탑과 시계탑이 함께 보인다.

저녁 식사 장소는 플로체 게이트 앞에 있는 클럽 레벨린이었다. 이 곳은 레벨린 요새 안에 있는 클럽인데, 이날은 특별히 IFA 행사를 위해 저녁 식사 장소로 바뀌었다. 레벨린 요새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였다.

IFA 분위기에 맞춰 온통 붉은색으로 조명을 밝힌 레벨린 요새. 이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공연을 봤다. 진행을 하는 여성은 무려 5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는데, 매년 IFA 사전행사를 진행했단다.

비에 젖은 두브로브니크를 뒤로 한 채 떠났다. 지난해 여름 거울처럼 반짝이는 스트라둔 대로를 바라보며 이 곳을 과연 또 찾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정말 꿈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불과 8개월 만에 다시 찾았다. 아름다운 꿈이었다. 또 찾을 수 있기를 꿈꿔본다.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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