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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블루레이)

울프팩 2017. 11. 18. 11:08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굳이 닮은 우리나라 감독을 찾는다면 홍상수 감독을 떠올릴 수 있다.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들은 시종일관 등장인물들의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도 특정 사건이 아닌 다양한 주제들을 두서없이 다룬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 속에 인생관, 철학, 세상사에 대한 관심, 두 사람의 감정 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마치 등장인물들의 대화 장면이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1995년)도 그런 영화다.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남녀가 대화를 통해 급격하게 가까워진 뒤 비엔나에서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다.

미국 청년(에단 호크)은 다음날 오전에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고 프랑스 처녀(줄리 델피)는 파리로 돌아가야 한다.


두 사람은 비엔나의 낮과 밤을 그렇게 대화로 지새운 뒤 먼 훗날을 기약한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기억의 공유다.


두 남녀는 서로 자신의 어린 시절, 첫사랑, 삶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하고 그 기억을 함께 나눈다.

우선 만남부터 그들은 훗날의 기억을 예감한다.


미국 청년은 프랑스 처녀에게 "멋 훗날 네가 결혼해서 예전만큼 재미없을 때 옛날에 만난 남자들을 떠올리며 그중 하나를 만났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 "그 남자 중 하나가 바로 나"라는 말을 꺼낸다.

그렇게 기억의 공유를 예감하며 시작한 만남은 기억의 소멸을 두려워하며 끝난다.


프랑스 처녀가 훗날 약속을 먼저 꺼내지 못한 이유는, 그리고 하룻밤 잠자리 갖기를 머뭇거린 이유는 남자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하룻밤 기억 속 여자아이로 끝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덩달아 관객들도 그들의 기억이 온전히 이어질지 훗날을 궁금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런 전개는 열린 결말로 이어지며 속편에 대한 기대를 높이게 된다.

덕분에 감독은 '비포' 시리즈를 3부작까지 끌어갔다.


마냥 대사에 의존하는 영화가 경우에 따라 부담스럽고 지루할 수 있지만 이를 보완해 주는 것이 감성적인 영상이다.

비엔나 곳곳의 호젓한 풍경, 또는 유명한 장소에서 이어지는 둘 만의 대화가 관객에게 영화에 대한 기억, 즉 추억을 만들어 준다.


에단 호크의 줄리 델피의 풋풋했던 젊은 시절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이는 곧 더불어 흘러간 보는 이의 지난 시절이기도 하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클로즈업 장면은 좋지만 중경과 야경의 디테일이 부족하며 밤 장면에서 그레인이 두드러진다.


음향은 DTS HD MA 2.0 채널을 지원한다.

부록은 예고편뿐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미국 남자와 프랑스 여자의 불완전한 연애담을 담은 이 작품은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

이들이 데이트 중 들린 비엔나의 'Alt & Neu' 음반점. LP가 빼곡한 이 음반점은 이 영화 덕분에 유명해졌다. 음반점 이름은 영어로 'old & new'라는 뜻.

음반점의 청음실에서 듣는 노래는 캐스 블룸의 'Come Here'.

죽은 자들의 기억이 모여 있는 곳, 비엔나의 공동묘지. 무명 묘지로 불리는 이 곳은 1840~1940년 사이에 다뉴브 항구 지역에서 발견된 죽은 사람들이 묻혀 있다.

비엔나의 프라터 공원 대관람차. 귀족들의 사냥터였던 이 곳은 1766년 시민들에게 개방되며 공원 겸 유원지가 됐다.

밤새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 흘러가는 영화는 마치 관광안내물처럼 비엔나 곳곳을 보여준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는 시나리오 작업에도 함께 참여했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설정을 알려주고 여기 어울리는 대사들을 두 배우에게 묻기도 했다.

극 중 두 사람이 전화놀이를 하는 장소로 나온 비엔나의 카페 슈페를. 1880년에 문을 연 이 곳은 유명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대학을 그만두고 멕시코만의 유정에서 굴착 노동자 생활을 했다. 그때 문학과 철학책을 많이 읽었고 그때 모은 돈으로 슈퍼 8mm 카메라를 사서 영화를 찍기도 했다.

하프시코드 연주에 맞춰 두 사람이 춤을 추는 장소는 비엔나 4구의 프레스가세 거리.

동트는 순간은 알베르티나 미술관 옥상에서 촬영. 독일 미술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 '토끼'를 소장한 곳.

링클레이터 감독은 고향인 텍사스에서 오스턴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녔다. 그때 훗날 이 영화와 '비포 선셋'을 촬영한 리 대니얼을 만났다.

영화는 두 사람의 기억을 복기하듯 그들이 들렸던 장소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마무리한다. 다뉴브 강 위에 떠있는 선상 카페인 쉬프 클럽.

링클레이터 감독은 1989년 필라델피아의 장난감 가게에서 우연히 에이미라는 여성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뜻이 통해 밤새 도시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경험이 결국 이 영화의 토대가 됐다.

링클레이터 감독의 경험을 윤택한 대사로 만든 인물은 여배우 겸 작가인 킴 크리잔. 그는 감독과 대화를 나누며 이 영화의 많은 대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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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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