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샤인 (블루레이)

울프팩 2014. 8. 19. 08:30

호주의 숨은 피아니스였던 데이비드 헬프갓의 연주는 독특하다.

자기만 알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연주한다.

 

얼핏보면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거나 감탄사를 내뱉는 글렌 굴드 연주를 떠올리게 하는데, 정도가 그보다 훨씬 심하다.

마음에 드는 부분을 여러 번 반복하거나 연주가 끝나면 객석으로 내려가 앞줄에 앉은 관객을 끌어 안는다.

 

왠지 잘했으니 칭찬해 달라고 칭얼거리는 어린애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피아노 실력 만큼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뛰어나다.

 

스콧 힉스 감독의 '샤인'(Shine, 1996년)은 비운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을 다룬 실화다.

피아노에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던 헬프갓은 무조건 곁에만 두려는 귄워적인 아버지를 피해 도망치듯 런던왕립음악원으로 유학을 간다.

 

그곳에서 그는 어렵기로 유명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하고 스승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뒤 쓰러져 정신분열로 입원을 한다.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호주로 송환됐고, 그렇게 그는 잊혀져 갔다.

 

무려 15년, 잊혀진 천재 피아니스트가 세상에 다시 등장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조그만 동네 레스토랑에서 재미삼아 연주를 하던 그를 부인 질리언이 발견해 다시 무대에 세운다.

 

첫 연주를 끝내고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그는 무대 위에서 아이처럼 펑펑 울음을 쏟아낸다.

그야말로 헬프갓이 어둠 속에서 세상의 밝은 빛으로 빠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극적으로 빛낸 것은 힉스 감독의 정갈한 연출과 더불어 배우 제프리 러시의 공이다.

그는 피나는 연습으로 직접 피아노를 치며 완벽하게 헬프갓을 재현해 냈다.

 

덕분에 때로는 아이같고 때로는 광인 같은 헬프갓의 모습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이를 반영하듯 제 69회 아카데미와 제 54회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영국 아카데미, 런던비평가협회, 미국 배우조합 등은 제프리 러시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헬프갓이 밝은 빛의 샤인이라면, 그의 아버지는 어둠이다.

더 없이 권위적이고 삐뚫어진 사랑으로 아들을 가두려는 아버지는 실제 뛰어난 바이얼리니스트이자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독일 배우 아민 뮬러 스탈이 연기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러시의 헬프갓이 밝게 빛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적재적소에 갖가지 에피소드와 적절한 음악을 배열해 입체적으로 헬프갓을 연출한 힉스 감독의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아마도 헬프갓에 대한 감독의 인간적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080p 풀HD의 16 대 9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아주 좋지는 않지만 무난하다.

 

미세한 지글거림이 보이긴 하지만 발그레한 피부 톤이 잘 사는 따뜻한 색감이 인상적이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적당한 서라운드를 들려준다.

 

부록은 DVD에 실린 것과 동일한 감독 인터뷰, 러시의 골든글로브 수상연설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1947년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난 헬프갓은 9세때인 56년, 퍼스 에이스테드포드에서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피아노를 따라 일어서서 쇼팽 폴로네이즈 A장조를 연주해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다. 

부모의 양육방법이 아이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를 잘 보여준 권위적 아버지는 독일 배우 아민 뮬러 스탈이 연기. 동독 출신인 그는 통일 전 체제 비판 성명을 지지해 동독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바이얼리니스트 겸 피아니스트, 화가로도 활동했다. 

헬프갓이 유학한 런던왕립음악원. 스콧 힉스 감독은 어느날 우연히 신문에서 헬프갓의 콘서트 기사를 읽고 관심을 갖게 됐다. 콘서트를 직접 본 그는 데이빗과 질리언 부부를 만나 영화 제작 의사를 밝히고 세부적 이야기를 수집했다. 

영화 제목은 어둠에서 밝은 빛으로 빠져나온 헬프갓을 의미한다. 

헬프갓은 1969년 런던왕립음악원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곡으로 유명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 뒤 스승들의 기립박수를 받고 쓰러져 정신분열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제프리 러시는 어려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으나 영화 촬영을 위해 다시 배웠다. 그는 헬프갓의 연주를 그대로 따라할 정도로 뛰어난 연주 실력을 보여 감독을 놀라게 했다. 극중 연주는 모두 러시가 직접 했으나 사운드트랙에는 헬프갓의 연주를 수록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은 초당 음표수가 다른 협주곡들보다 월등하게 많아 아주 빠른 연주가 필요하다. 런던왕립음악원에서 헬프갓을 가르친 스승 시릴 스미스는 이 곡의 연주를 "삽으로 석탄 1,000톤을 푸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심지어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조차 피아노협주곡 3번을 가리켜 크고 뚱뚱한 코드로 가득찬 "코끼리를 위한 작품"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1909년 뉴욕에서 이 곡을 직접 연주하며 처음 공개했다. 

헬프갓은 런던왕립음악원 공연 직후 쓰러진 뒤 6개월 간 정신병원을 오가며 치료받다가 그의 아파트 지하실에서 아사 직전 상태로 발견돼 호주로 송환됐다. 이후 동네 레스토랑에서 연주를 하다가 1984년에 15세 연상인 질리언을 만나 결혼했다. 

더스틴 호프만의 주인공 역할에 관심을 보였다. 실제 헬프갓은 1997년과 2004년 내한 공연을 가졌다.

샤인 (1Disc)
스콧 힉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샤인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향수 (블루레이)  (8) 2014.08.25
위대한 여정 (블루레이)  (2) 2014.08.21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블루레이)  (6) 2014.08.17
피아노 (블루레이)  (0) 2014.08.12
니드 포 스피드 (블루레이)  (6) 2014.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