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스파이

울프팩 2015. 6. 5. 00:08

자고로 영화 속 스파이는 두 종류다.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나 '0011' 나폴레옹 솔로, '킹스맨' 같은 댄디한 부류와 '오스틴 파워'나 '자니 잉글리쉬' 처럼 작정하고 코미디로 접근한 어설픈 부류들이다.

 

굳이 폴 페이그 감독의 '스파이'(Spy, 2015년)를 여기 맞춰 분류하자면 후자에 가깝다.

그런데 이 작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주인공인 스파이가 여자(멜리사 맥카시)다.

그것도 미인계를 구사하는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가 아니라 날렵함과는 거리가 먼 육중한 몸매를 가진 아줌마 같은 스타일이다.

 

여기에 이 작품이 의도한 기존 스파이물의 고정 관념을 뒤집어 엎는 가치의 전복이 있다.

결코 세련되고 잘 생기고 빼어난 미인만 세계를 구하고 인류의 평화를 지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엉뚱한 소동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제임스 본드 못지 않은 활약으로 악당들을 시원하게 혼내주며 더불어 팡팡 터지는 웃음폭탄까지 선사한다.

그런 점에서 기존 영웅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주인공 수잔 쿠퍼는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 주는 존재다.

 

오히려 잘 생기고 늘씬한 영웅들이 주는 통쾌함 이상의 가치 전복이 가져오는 포복절도할 유머로 카타르시스를 해소해 준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제임스 본드가 아닌 수잔 쿠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007의 메인타이틀을 흉내낸 인트로나 오히려 동성 보조 요원의 지원, 그저 색을 밝히고 힘만 과시하는 마초 적인 남성 요원들의 모습을 통해 은근히 기존 스파이물을 비꼬기까지 한다.

팔등신 선남선녀가 아닌 주인공이 이토록 매력적으로 보인 작품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의 앞에선 주드 로, 제이슨 스타뎀 같은 스타들이 보조에 불과할 뿐이다.

"꼴에 여자라고..." 라는 대사를 내뱉고 사라져간 악당의 모습과 함께 분명하고 당당하게 여성 요원으로 우뚝 선 주인공의 모습에서 이제 스크린 속 영웅들도 더 이상 선남선녀 만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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