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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로렌스(4K)

울프팩 2022. 7. 3. 01:30

데비이드 린(David Lean)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1962년)는 다분히 연극적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E Lawrence, T.E 로렌스)의 일대기를 다룬 이 작품은 요즘 시각에서 보면 셰익스피어의 연극 무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다.

그림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주연인 피터 오툴(Peter O'Toole)의 약간 과장된 듯한 연기가 그렇다.
어쩌면 당시 크게 이름을 떨치지 못한 피터 오툴 입장에서는 강렬한 연기로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었을 수 있다.

논란의 인물 T.E 로렌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T.E 로렌스는 아랍어를 할 줄 알아서 제1차 세계대전 때 이집트 카이로로 파견됐다.
영국 육군의 정보장교 역할을 하게 된 그는 당시 중동 지역을 장악한 오스만 제국, 즉 터키의 영향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아랍 국가들이 뭉쳐 터키에 대항하도록 만드는 밀명을 받는다.

로렌스는 서로 반목하며 대립하던 여러 아랍 부족들을 진심으로 설득하는 과정에서 환심을 샀다.
덕분에 아랍 부족들과 함께 터키의 요새였던 아카바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기습해 점령하면서 아랍인들이 터키를 몰아내고 독립하도록 도와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터키군에게 잡혀 성적 고문을 당한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었다.
무엇보다 아랍 민족회의를 통해 하나 된 아랍국가 건설을 꿈꿨으나 여러 부족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열강들의 간섭으로 무산되면서 커다란 좌절을 겪었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갔다가 공군에 병사로 재입대하는 등 방황을 하다가 1935년 오토바이 사고로 47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는 아랍 전쟁을 치른 과정을 '지혜의 일곱 기둥(The Seven Pillars of Wisdom)'이라는 책에 담았는데 이를 토대로 데이비드 린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사후 그에 대한 평가는 많이 엇갈린다.
아랍 민족을 도운 영웅이라는 호평과 정작 아랍 민족에 대한 이해보다 영국의 이익을 대변해 활동한 이야기를 다소 과장되게 부풀렸다는 혹평이다.

영화 초반에도 로렌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리는 대목들이 나온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아무래도 로렌스의 저서를 바탕으로 한 만큼 냉정한 평가보다 중동 활동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식으로 구성했다.

그렇다 보니 아랍인들이 로렌스에게 전적으로 의지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여 지나친 백인 우월주의 시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아랍 민족의 자주성과 독립투쟁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스펙터클한 영상이 압권
하지만 로렌스의 영웅적 활동을 담아낸 영상만큼은 군말이 필요 없을 만큼 압권이다.
70미리 영상을 통해 호쾌하게 펼쳐지는 사막의 풍경을 보면 새삼 '스펙터클'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린 감독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 요르단, 스페인, 모로코를 옮겨 다니며 사막의 풍광을 담았다.
그만큼 이 작품은 프로젝터를 이용해 대화면으로 봤을 때 빛이 난다.

특히 광활한 검은 사막 위로 핏빛처럼 붉은 해가 떠오르는 영상은 압권이다.
끓어오르는 사막의 신기루 사이를 뚫고 작은 점으로 시작해 서서히 형체가 커지며 말을 타고 알리 왕자(오마 샤리프 Omar Sharif)가 등장하는 장면도 강렬하다.

한마디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사의 사막을 더 할 수 없이 시원하고 장대한 풍광으로 담은 영상이 1960년대 블록버스터의 정수를 보여준 작품이다.
여기에 요르단과 모로코 군대까지 동원해 아카바 요새와 다마스쿠스 습격 등을 실감 나게 재현했다.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시절인 만큼 거대한 전투 장면을 실제 인력과 말, 낙타를 동원해 스펙터클 하게 구현했다.
특이하게도 로맨스나 러브라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엑스트라를 제외하고 여배우가 아예 없다.

심지어 여성 엑스트라조차도 보이지 않는 전작 '콰이강의 다리'에서도 그렇듯 린 감독은 남자들의 강렬한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박력 있는 영상으로 담아내는데 일가견 있다.

피터 오툴 외에 알렉 기네스(Alec Guinness), 앤소니 퀸(Anthony Quinn) 등 대배우들의 호연과 애드리언 볼트 경의 지휘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웅장하게 연주한 모리스 자르의 음악도 영화를 빛냈다.

오로지 로렌스 하나만 보고 달린 이 작품은 제3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촬영, 편집, 미술, 음악, 녹음상 등 무려 7개 분야에서 수상했다.

4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4K
새로 출시된 4K 타이틀은 무려 4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4K는 3시간 47분 분량의 본편을 두 장에 디스크에 나눠 담았고, 일반 블루레이도 본편과 부록을 각각 한 장씩 수록했다.

2160p UHD의 2.2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의 화질은 60년 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화질이 좋다.
물론 오래전 작품인 만큼 지글거림이 보이고 윤곽선도 두껍지만 잡티나 스크래치 등 필름 손상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존 블루레이 타이틀보다 개선된 화질은 색감이 뚜렷하고 진하며 샤프니스도 향상돼 윤곽선이 선명하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훌륭하다.

오토바이 이동방향을 소리로만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소리의 이동성과 방향감이 좋다.
기차 폭발 장면 등을 보면 저음이 둔중하고 박력 있게 울린다.

부록은 제작과정, 피터 오툴의 회고, 삭제 장면, 복원 작업을 지휘한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설명, 후세인 요르단 국왕의 촬영장 방문 영상 등 풍부한 내용들을 담았다.
대부분의 부록이 한글자막을 지원하며 4K 복원작업 등 일부는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집트 카이로의 영국군 본부에서 로렌스가 지도를 보는 장면은 스페인 세비야의 페루 영사관 지하실에서 찍었다. 제작진은 카이로처럼 보이도록 창 밖으로 낙타 다리가 보이게 끌고 다녔다.
로렌스는 군복입는 것을 싫어해 평상복을 입고 출근했다가 지적을 당할 만큼 괴짜였다. 카이로의 영국군 본부 실내 장면은 세비야의 에스파냐 광장에서 찍었다.
이 장면 외 한낮 태양을 찍은 장면은 가짜 태양을 그려 놓고 찍었다. 사막에서 태양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 린 감독은 영화 카메라를 만든 파나비전사에 가서 카메라와 렌즈를 직접 골랐다. 제작진은 사막 촬영 중 카메라가 고장날까봐 젖은 천을 둘러 식히고, 필름을 음식 보관용 냉장 트럭에 넣어 뒀다.
제작진은 여러번 촬영할 때마다 테니스 코트용 써래와 밀대, 빗자루 등을 사용해 모래를 쓸어 흔적을 지웠다. 또 강풍기를 틀어 모래 위에 물결 무늬를 만들었다. 심지어 트럭에 실은 다양한 색의 가루를 강풍기로 날려 모래 색이 다르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지금 같으면 환경파괴로 난리날 일이다.
신기루를 뚫고 오마 샤리프가 등장하는 유명한 장면은 파나비전에서 이 영화를 위해 특별 제작한 482mm 렌즈로 촬영. 파나비전은 '데이비드 린 렌즈'로 부르는 이 렌즈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닥터 지바고'로 유명한 이집트 배우 오마 샤리프가 알리 왕자로 등장. '황야의 7인'에 나온 독일배우 호르스트 부흐홀츠, 프랑스 배우 모리스 로네도 알리 왕자 역 물망에 올랐다.
프레디 영 촬영 감독은 이 작품과 린 감독의 작품 '닥터 지바고' '라이언의 딸도 촬영해 아카데미 촬영상을 세 번 받았다.
제작진은 요르단에서 찍은 앤소니 퀸이 나오는 아랍 부족 장면을 3주 동안 무려 5km에 걸쳐 실제 텐트를 치고 찍었다. 이를 위해 모인 아랍부족들은 아예 마을을 형성해 가게까지 열었다.
아랍인들이 터키군의 아카바 요새를 습격하는 장면은 스페인 남부 알메리아 항에서 찍었다. 실제 아카바 풍경이 별로여서 제작진은 알메리아에 마을 전체를 만들고 야자수를 실어와 심었다. 로렌스는 가로지르는게 불가능한 사막을 건너 뒤쪽에서 아카바를 급습해 터키군의 허를 찔렀다.
개봉 당시 제작사는 영화가 너무 길어 35분을 잘라냈다. 1989년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나머지 부분을 찾아내 원래 분량대로 복원해 재개봉했다. 복원판의 일부 장면은 오디오가 소실돼 배우들이 재녹음했고 고인이 된 잭 호킨스 목소리는 찰스 그레이가 녹음했다.
스페인의 카보 데 가타에서 기차 습격 장면을 촬영. 스페인 철도청에서 기차를 빌려줬다. 린 감독은 2,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2년 동안 이 영화를 찍었다.
배우와 제작진은 요르단 사막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며 촬영했다. 린 감독은 요르단에서 촬영 장소를 찾다가 실제 로렌스가 파괴한 기차와 철도를 발견했다.
로렌스는 터키군에게 잡혔을때 매를 맞고 강간당했으나 영화에 매맞는 장면만 나온다. 로렌스 역으로 말론 브랜도와 알버트 피니도 물망에 올랐으나 거절했고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알코올 중독이어서 무산됐다.
피터 오툴은 캐서린 헵번의 추천이라고 알려졌으나 오툴은 인터뷰에서 린 감독의 인도인 부인과 가까운 힌두교 지도자가 '영국 은행을 턴 날' 영화를 보고 거기 출연한 오툴을 추천했다고 밝혔다.
아랍인들이 다마스쿠스의 터키군을 추격해 몰살하는 장면은 모로코 와르자자트에서 촬영. 모로코 국왕의 협조로 모로코 군인들이 터키군을 연기했다.
아랍민족회의 장면은 스페인 세비야의 로페 데 베가 극장의 원형 홀에 원탁을 설치하고 찍었다. 하차투리안과 벤자민 브리튼도 영화 음악 작업에 참여했으나 중간에 포기했다. 그 바람에 모리스 자르가 전체 음악을 떠안아 6주 만에 완성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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