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안티크라이스트(블루레이)

울프팩 2016. 7. 26. 21:00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안티 크라이스트'(Antichrist, 2009년)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2009년 칸영화제 기자회견이다.

당시 영화 상영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어느 기자가 던진 질문이 화제였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해명하시오."

"해명? 해명을 하라고? 내가 왜 해명을 해야 하나. 본 그대로 느끼면 된다. 감독이 작품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야 하나. 난 그럴 수 없다."

 

기자도 만만찮았지만 그의 당돌한 질문에 화가 난 트리에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갔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감독이다. 나보다 더 뛰어난 감독은 보지 못했다. 물론 모든 것을 창조한 하나님은 나보다 위대하다."

 

급기야 트리에 감독이 스스로를 가리켜 '하늘 아래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고 천명하게 만든 이 작품은 그만큼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영화를 보면 참으로 충격적이다.

 

적나라한 헤어 누드는 물론이고 성행위 장면도 성기를 노출한 채 포르노처럼 행위를 보여준다.

여기에 가위로 음핵을 자르고 다리를 꿰뚫어 맷돌을 매다는 장면 등 강렬한 시각적 폭력이 절로 눈길을 돌리게 만든다.

 

트리에 감독은 왜 이렇게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는 영화를 만들기 3년 전에 우울증을 아주 심하게 앓았다.

 

그는 당시 치료를 받으며 느꼈던 불안과 공포, 충격 등을 이 영화에 고스란히 투영했다.

그 결과 영화는 아주 우울하고 무거우며 파괴적이고 충동적이다.

 

마치 우울증 환자의 머리 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고 스크린에서 우울이 물처럼 흘러 뚝뚝 떨어지는 듯 하다.

특히 영화가 논란이 된 것은 시각적인 자극과 함께 여성 혐오를 불러 일으키는 부정적인 내용이다.

 

샤를롯 갱스부르가 연기한 여주인공은 남편(윌렘 대포)과 열정적인 잠자리를 갖던 중 아기가 창문 틀에 기어 올랐다가 떨어져 숨지는 사고를 겪는다.

그때부터 아내는 극도의 우울과 비탄 속에서 자기 혐오에 빠져든다.

 

보다 못한 남편이 숲 속 오두막을 얻어 '에덴'이라 이름 붙이고 아내의 치유에 나선다.

그러나 오히려 아내는 자연의 현상에 부정적 영향을 받아 광기에 젖어들고 급기야 극한의 폭력으로 치닫는다.

 

내용만 놓고 보면 여성과 자연을 사악한 기운에 사로잡힌 존재로 그린 여성 혐오적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리에 감독은 "여성 혐오를 경멸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어째서 극 중 여주인공을 이토록 파괴적으로 그렸을까.

트리에 감독은 여성 혐오적인 묘사를 통해 거꾸로 여성 혐오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오랑캐를 이용해 오랑캐를 잡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살로 소돔의 120일'(http://wolfpack.tistory.com/entry/살로-소돔의-120일블루레이)을 만들어 파쇼 체제의 문제점을 부각시킨 파울로 파졸리니 감독과 일맥상통한다.

 

트리에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도마에 오른 이 작품은 그만큼 논란의 여지가 많아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공을 들여 잘 찍은 영상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듯 싶다.

 

초고속 카메라를 사용해 느리게 잡은 영상들은 내용을 떠나 아름답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왜곡해 풍경이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정물화처럼 보이게 만든 영상은 마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작품을 떠올리게 만든다.

 

트리에 감독도 이를 의식한 듯 엔딩 크레딧을 통해 이 작품을 타르코프스키 감독에게 바쳤다.

특히 이런 영상들은 인트로와 피날레에 사용한 헨델의 '리날도'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laschia chio pianga'와 조화를 이룬다.

 

그만큼 영상과 음악의 앙상블이 잘 맞은 작품이다.

참고로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삭제로 출시돼 국내 극장 개봉시 잘려나간 장면들이 온전히 수록됐다.

 

1080p 풀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소프트한 영상의 중경이나 원경이 부드럽고 안온한 느낌을 살린 반면 클로즈업에서는 디테일을 세세하게 살려 날카로운 느낌을 강조했다.

 

DTS HD MA 5.1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간헐적인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 준다.

리어를 간간히 활용하는 편이지만 확연하게 채널 분리를 통해 현장 분위기를 잘 살린 소리를 들려준다.

 

예를 들어 전방에 바람 소리가 퍼지면서 후방에서 사람 말소리가 나오는 식이다.

부록으로 감독과 배우 인터뷰, 시각 스타일과 사운드 디자인, 분장과 소도구, 동물들 이야기, 여성 혐오 관련 내용과 2009년 칸영화제 기록영상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그러나 트리에 감독과 영화학자 머레이 스미스의 음성해설은 한글자막을 지원하지 않는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남자 주연인 윌렘 데포. 공교롭게 그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예수의 마지막 유혹'에서 예수를 연기했다.

트리에 감독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이 작품은 비극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정지화면에 가까운 슬로 영상이 아름답다.

여인이 정사에 빠진 사이 죽은 아이나 사슴이 낳은 죽은 새끼, 맹금류에게 희생되는 어린 새 등 새끼의 죽음을 되풀이해서 보여 준다. 죽은 자식은 결국 부모의 원죄가 된다. 추락하는 아이는 인형을 사용.

트리에 감독은 이 작품의 자료 수집을 위해 여러 군데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때 본 풍경들이 영화 속에 이미지로 사용됐다.

극 중 '에덴'이라는 이름의 오두막은 노르웨이에서 발견한 100년된 나무집이다. 이를 분해해서 독일의 외진 숲으로 옮겼다. 주변에 참나무가 없어서 몇 그루를 제작진이 만들고 나머지는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렸다.

처음 여주인공으로 고려된 배우는 에바 그린이다. 그린이 거절 후 샤를롯 갱스부르에게 제의했다. 가수 겸 배우 제인 버킨의 딸인 갱스부르는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까마귀나 사슴, 여우 등은 모두 조련받은 동물들을 사용했다. 죽은 새끼사슴의 경우 모형을 만들어 사슴의 뒤에 매달고 촬영.

트리에 감독은 리허설 없이 대본 리딩만 거치고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신 촬영 중간에도 컷을 하지 않고 계속 연기 지시를 한다. 일부러 연기 지도를 하기 위해 촬영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서다.

트리에 감독은 내러티브를 최소화하고 꿈에서 본 장면을 이미지로 그대로 옮기기도 했다. 배우들에 따르면 촬영 당시 감독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연출을 했다고 한다.

맷돌이 다리를 꿰뚫은 장면은 말랑말랑하고 안에 뼈가 들어 있는 실리콘 재질의 인조다리를 사용했다.

여주인공이 가위로 음핵을 자르는 장면은 고무로 만든 가짜 가위로 실리콘으로 만든 인조 음핵으로 촬영.

"자연이 사탄의 교회냐"라는 대사에서 보듯 자연이 여성을 파괴적으로 변하게 만든다. 트리에 감독은 니체의 글 '안티 크라이스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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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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