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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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부밴드-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

울프팩 2005. 8. 7. 23:47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1997년)가 개봉한 시점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영화를 본 극장만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없어진 낙원상가의 허리우드였다.
서울에 많고 많은 극장을 놔두고 왜 하필 개봉관치고 허름한 이곳에 가서 본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곳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봉 전부터 말이 많았던 이 영화는 탈선을 일삼는 10대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처럼 찍은 문제작이었다.

지금은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중에 풀빛출판사에서 나온 같은 제목의 2권짜리 제작일지를 읽어보면 배우로 출연한 일부 아이들이 실제 본드를 불었고 그러다가 죽기까지 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어쨌든, 내게 이 작품은 영화보다 음악이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특히 영화 중간에 흘러나오던 노래 한 곡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온몸을 저리게 만들었다.
참으로 비참한 노랫말과 타령조의 선율이 역설적이게도 아름답게 들린 노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래가 바로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의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였다.

영화 개봉 후 한참 지나 4곡의 노래를 달랑 담아서 내놓은 이들의 첫 번째 음반인 '손익분기점'은 참으로 독특했다.
우선 트위스트 김이 두 손과 두 발을 꽁꽁 묶인 채 길 위에 내동댕이 쳐진 사진이 눈길을 끈다.


사진만큼 독특한 것은 시멘트가 갈리는 듯 걸걸한 목소리의 보컬 백현진이다.
그는 쥐어짜듯 때로는 신음하듯, 때로는 피를 토하듯 절규하며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독특한 노래를 불렀다.

대표적 노래가 제목과 너무도 역설적인, 오히려 아름답기는커녕 비극적인 이야기들만 모아서 노랫말을 만든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다.
이 노래를 비롯해 '밭 가는 돼지' '사각의 진혼곡' 등 이후에 발표한 노래들도 독특한 아우라가 넘쳐 난다.

이들의 비범한 노래 순례는 이후에도 여러 편의 문제작에서 만날 수 있다.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등 몇 편의 영화에 이들의 노래가 나온다.

특히 이들의 멤버 장영규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을 비롯해 여러 편의 영화 음악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