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에로스

울프팩 2006. 9. 3. 23:28

'에로스'(Eros, 2004년)는 왕가위, 스티븐 소더버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 3명의 감독이 각각 감독한 약 40분 분량의 단편 3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다.
이 작품은 제목이 말해주듯 사랑에 대한 세 감독의 헌사다.

워낙 개성이 강한 감독들인 만큼 작품의 색깔도 확연하게 차이난다.
왕가위 감독은 그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것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은근하면서도 안타까운 사랑을 다뤘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술자리에서 흔히 얘기하는 야한 농담처럼 성을 패러디했다.
반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은 가장 직접적으로 육욕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한다.

평소 세 감독의 스타일을 좋아했다면 한 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내용을 떠나 감독의 스타일을 이해하겠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음악과 구성, 촬영, 배우들의 연기 모두 훌륭한 왕가위의 '그녀의 손길'편이 가장 마음에 든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영상은 평범한 화질이다.
링잉과 스크래치는 없지만 약간 지글거리고 화면도 살짝 뿌연편이다.

DTS를 지원하는 음향은 리어 스피커를 적절하게 사용해 그럴듯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그러나 기대할 정도는 아니다.

씁쓸한 것은 부록.
음성해설도 없고 내용이 많지도 않은 부록을 굳이 별도 디스크에 담을 필요가 있는 지 의문이다.
아무래도 디스크 숫자만 2장으로 늘리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파워 DVD 캡처 샷>
-왕가위 '그녀의 손길'편-

각 작품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로렌조 마토티의 삽화는 3편의 작품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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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큰 공리는 목선이 아름답다. '화양연화'에 나온 장만옥도 그렇다. 그래서 긴 목을 살려주는 치파오가 잘 어울린다. 아마도 왕가위는 치파오가 잘 어울리는 배우를 선호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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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는 '화양연화' 이후 아련한 사랑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2046'에 이어 '에로스'도 마찬가지다. 왕감독은 '볼룸댄서의 황혼'이라는 책에서 이 영화의 영감을 얻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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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046' '에로스'의 공통적인 특징은 우수에 찬 마스크를 가진 남자 배우들이 주인공이라는 점. 이 작품의 장첸도 '화양연화'의 양조위같은 분위기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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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시간을 기억하는 긴 복도와 계단, 왕가위 작품의 상징들이다. 응시하는 듯한 달리(dolly), 꿈을 꾸는 듯한 패닝은 왕가위의 영원한 단짝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의 솜씨. '화양연화' 분위기의 음악은 피에르 라벤이 맡았다.

-스티븐 소더버그 '꿈 속의 여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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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이 작품은 사실상 단색영화다. 주인공이 꾸는 꿈은 컬러로 묘사했지만 사실상 쓰인 색은 거의 한가지나 다름없다. 결국 현실의 흑백이나 꿈 속의 컬러나 마찬가지라는 은유가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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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펠리니의 위대한 작품 '달콤한 인생'이 생각나는 장면. 틈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파편같은 그늘을 만든다. 왠지 아련하면서도 나른한 느낌이 든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위험한 관계'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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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중풍으로 몸의 반쪽이 마비가 되다시피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은 9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으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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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작가주의 계열의 감독들이 그러하듯, 안토니오니 감독도 작품을 온통 기호로 가득 채워넣었다. 여성의 생식기를 나타내는 듯한 비경들이 여러 군데 등장한다.
세 편 중 가장 제목에 부합하는 작품. 안토니오니 감독의 사랑은 참으로 노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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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니 감독은 이야기보다 탐미주의적인 장면을 통해 시를 쓰듯 사랑을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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