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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오로라 공주

울프팩 2006. 3. 4. 10:44

영화배우 방은진이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 '오로라 공주'(2005년)는 기대하지 않았으나 재미있게 본 수작 영화다.
기대를 하지 않은 이유는 엄정화가 주연했기 때문.

'싱글즈'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 두 편을 제외하고 출연한 작품들에서 보여준 연기가 판에 박은 듯 똑같고 그저 그랬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두 편을 제외하고 그의 역할이 비중 있게 드러난 작품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선입견을 깰 만큼 엄정화의 변신이 훌륭했다.
아울러 작품 자체도 아동 성추행에 대한 경각심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범인에 대한 엄마의 증오와 복수심을 아주 극적으로 잘 전달했다.

그만큼 대본의 구성이 탄탄했고 긴장을 늦추지 않은 감독의 연출 솜씨도 대단했다.
데뷔 감독이라고는 하지만 영화판에 오래 몸담은 배우답게 연출에서도 만만찮은 관록을 과시했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의 화질은 평범하다.
샤프니스가 그다지 높지 않고 암부디테일도 떨어진다.

DTS를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를 느낄만한 부분이 많지 않다.
음량이 과장된 편이어서 볼륨을 약간 줄이고 감상하는 게 좋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는 느닷없이 강도높은 살인으로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우연처럼 터진 사건들이 막판에 정교한 날줄 씨줄로 얽힌다.
문성근, 권오중이 형사 콤비로 나온다. 둘의 연기가 엄정화에 비해 오히려 평이했다.
캐스팅도 맛깔스럽게 잘했다. 현영, 김용건, 박효준, 장현성 등 모두 적재적소에 제대로 캐스팅됐다.
이 작품은 엄정화의 이미지변신과 연기력을 입증하는 좋은 작품이 됐다.
제목은 오래전 MBC에서 방영했던 만화 '오로라공주와 우주손오공'에서 따왔다. 원래 이 작품은 서민희의 창작 시나리오인 '입질'을 토대로 방은진이 각색했다.
성폭행으로 딸을 잃은 엄마의 복수는 처절하고 집요하다.
의외로 이혼한 부부인 둘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궁금하지 않은 이유는 해당 부분의 여백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방은진식 블랙유머인가. 그렇지만 내리구른 택시가 이동화장실을 들이받아 온통 오물투성이가 돼서 기어나온 사람을 보고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굳이 필요한 부분이었을까 싶다.
남자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은 엄정화가 가위를 꺼내는 장면부터 소름이 돋았다. 촬영도 참 잘했다. '혈의 누' '범죄의 재구성' '피도 눈물도 없이' 등 스피디하며 긴장감 넘치는 촬영에 일가견 있는 최영환이 카메라를 잡았다.
엄정화의 표정이 섬뜩하다. 예전 '싱글즈' 촬영을 끝내고 인터뷰 때문에 엄정화를 만났을 때 그의 얼굴에서 저런 표정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였어도 도와주는 이 하나없는 고독한 아이의 뒷모습을 통해 아동 성폭행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책임이란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뚜렷한 메시지를 방 감독은 엄마의 입이나 내레이션을 빌려 설명하지 않는다. 묵묵히 커트로 이어진 영상을 통해 웅변만큼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막판 반전과 복선도 훌륭하다. 소리없이 묻히기에 아까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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