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임상수 감독의 '하녀'

울프팩 2010. 5. 17. 05:44
고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품 '하녀'는 영화 애호가들이 명작으로 꼽는 영화다.
특히 작가주의 감독들 사이에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절대적이다.

그런 만큼 리메이크를 할 경우 철저한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임상수 감독의 '하녀'(2010년)는 원작에 대한 부담이 컸던지, 이상하게 뒤바꾼 설정 때문에 연구와 고민의 흔적이 묻혀 버렸다.
우선 임 감독은 원작에서 벌어지는 생존의 문제들을 욕정의 싸움으로 바꿔 놓았다.

다같이 배고팠던 60년대에 여공이나 하녀라는 직업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원작의 어린 여성들도 밥을 먹기 위해 여공이나 하녀가 됐고, 그렇다보니 갇힌 세상 안에서 순수한 사랑에 눈을 뜬다.

60년대 여성들의 사랑은 한 번 바친 순정이 곧 목숨이었다.
그래서 돈의 문제를 떠나 첫 남자에게 첩이 돼서라도 머물려는 집착을 보인다.

여기서 모든 비극이 발생한다.
결코 한 집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곧 목숨을 건 싸움으로 번진다.

이 과정이 원작에서는 화면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도높은 긴장으로 몰아친다.
긴장감 만큼은 원작이 롭 라이너 감독의 '미저리'보다 한 수 위다.

그런데 임 감독은 이 과정을 거두절미하고 뚝 잘라 버려 긴장은 실종되고 끈적끈적한 욕정만 남았다.
그렇다보니 급작스레 결말로 치달으며 맥빠진 영화가 돼버렸다.

여기에 임 감독의 최대 실수는 등장 인물을 대부분 스테레오 타입으로 그린 점이다.
원작의 남성이나 부인은 당시 시대가 요구했던 도덕성과 생존의 문제로 고민하며 선과 악을 왔다갔다 하는 인물들이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타당성있는 그들의 선택에 욕을 하지 못한다.

하녀도 마찬가지.
살기위해 악에 치받친 하녀의 모습은 무서우면서도 동정이 간다.

하지만 임 감독의 작품에서는 이런 모습이 실종됐다.
지나칠 정도로 부자인 집안은 마냥 악하기만 하고 하녀는 순둥이가 돼버렸다.
60년대처럼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던 시대에도 선악이 혼재했는데, 요즘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선과 악의 단순 이분법으로 맞부딪치는 설정을 과연 누가 납득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아마도 임 감독이 원작에 끌렸던 것은 남자, 그것도 가장의 바람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원작은 엔딩을 관객에게 중년 남자의 바람기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끝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극같은 설정이었다.

'바람난 가족'을 만든 감독답게 제법 사는 남자의 바람 때문에 빚어지는 원작의 비극은 관심이 끌리는 소재였을 수 있다.
그래도 이렇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아니 만드는게 나았다.

참고로, 전도연이 입원한 병실에서 전도연 너머로 모자가 실뜨기하는 모습은 원작의 인트로에 대한 오마주다.
또 이정재가 피아노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중 하필 '템페스트'를 연주하는 모습도 원작의 피아노 교사로 나온 김진규에 대한 오마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녀:고전의재창조(DVD)
김기영 감독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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