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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줄리에타 (블루레이)

울프팩 2017. 7. 18. 08:08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줄리에타'(Julieta, 2016년)는 독특한 영화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만남과 이별을 강조하듯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함께 이야기한다.

 

영화는 줄리에타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우연히 기차에서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여인은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고 바닷가 마을에 사는 남자를 찾아가 아이를 낳아 기른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들이 터지면서 여인은 사랑했던 많은 것들과 이별을 한다.

여인은 사랑했던 존재들이 곁을 떠나자 심한 무기력증에 빠진다.

 

그들의 빈자리를 보며 새삼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들이 보여준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치 퇴화한 생물체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생활을 놓아버렸던 여인은 어느 날 12년 만에 사라진 딸의 편지를 받고 새로 시작할 결심을 한다.

 

그동안 사랑이 찾아오기를 기다렸으나 이제는 사랑이란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길을 나선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언제나 그렇듯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로 관심을 끌었던 만큼 그의 영화가 독특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우선 만남과 이별을 동시에 이야기하면서 이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강조하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다.

 

그것은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성질이 만나 강하게 충돌한 뒤 새로운 것으로 거듭나는 변증법적 전개 방식을 띄고 있다.

이는 곧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남 뒤 헤어짐이 있는 것은 정한 이치이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이라는 지극히 동양적인 사고와 맞닿아 있다.

 

이 말이 나오는 불교의 법화경에서는 결국 만남과 이별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 몸인 하나의 완성체로 보았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알모도바르 감독은 색깔을 사용했다.

이 점이 두 번째 흥미로운 점이다.

 

영화 곳곳에 빨강과 파랑이 한 화면에 등장하며 끊임없이 대비되면서 조화를 이루는 미장센을 선보였다.

마치 서로 반대되는 성질의 음양이 만나 조화를 이루듯 두 색깔은 한 장면 속 각종 소품이나 의상, 무늬 등에 등장해 서로 충돌하며 앙상블을 이룬다.

 

이는 곧 충돌이며 상생이다.

어느 한 가지 색만 등장할 때는 균형이 깨진 상황을 의미한다.

 

불길한 이별을 암시하는 가정부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은 온통 푸른색 일색이고 줄리에타의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듯 시작 장면은 온통 붉은 드레스로 출렁인다.

이처럼 한 화면에서 색의 충돌과 조화는 영화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그만큼 이 영화는 내러티브와 함께 색의 변화로 메시지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더불어 알모도바르 감독의 예전 작품인 '그녀에게' 등에서 보여준 사랑 뒤 찾아오는 이별의 쓸쓸함과 달리 새로운 만남이라는 희망을 기대하게 만드는 감독의 변화도 눈에 띈다.

 

1080p 풀 HD의 16 대 9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무엇보다 강렬한 원색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윤곽선도 깔끔하게 떨어진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요란하지 않지만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특히 소리가 움직이는 경로를 잘 살려서 각종 효과음 등이 영상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부록으로 정성일 평론가의 음성해설, 예고편, 제작과정, 국내판 디렉팅 필름과 캐릭터 영상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HD 영상으로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는 강렬한 붉은색으로 만든 줄리에타의 드레스와 함께 시작된다.

'그녀에게'에 출연했던 다리오 그란디네티(왼쪽)도 등장.

젊은 시절의 줄리에타가 인연을 만나는 기차 객실은 스튜디오에 만든 세트다. 차창 너머에 그린스크린을 설치한 뒤 컴퓨터그래픽으로 움직이는 풍경을 삽입했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이 함께 등장해 조화를 이루는 영상을 보여준다.

붉은색 테라코타 화병, 푸른색 무늬가 들어간 타일 등 색의 조화를 통해 만남과 이별, 탄생과 죽음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줄리에타 역할은 아드리아나 우가르테와 엠마 수아레스라는 두 배우가 2인 1역을 했다. 20,30대의 젊은 줄리에타는 우가르테, 40대 이후는 수아레스가 맡았다.

두 배우가 한 역할을 한 이유는 감독이 원했기 때문이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한 배우가 다양한 연령대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분장만으로 커버하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감독은 캐나다의 여류 소설가 앨리스 먼로의 소설 'Runaway'를 읽은 뒤 먼로의 단편 'chance' 'soon' 'silence' 등 3편을 묶어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모두 줄리에타가 주인공인 작품들이다.

극 중 남성성을 상징하는 조각은 영화 '킹콩'에서 킹콩이 손에 쥔 금발 미녀와 동일한 비율로 제작됐다. 조각은 미켈 나바로가 만들었다.

감독은 소설 속 배경인 캐나다를 미국으로 바꿔 찍을 예정이었으나 후에 스페인으로 다시 고쳤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처음에 메릴 스트립에게 주연을 제의해 응낙을 받았으나 영어 대본에 확신이 없어 미국에서 촬영하지 못했다.

극 중 음악도 좋다. 음악은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가 맡았다.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노래 'Si no te vas'는 차벨라 바르가스가 불렀다.

감독은 루이 브뉘엘의 영화 '욕망의 모호한 대상'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줄리에타를 두 사람이 연기하도록 했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에서는 캐롤 부케와 앙헬라 모리나가 같은 역할을 연기했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줄리에타
페드로 알모도바르 / 엠마 수아레즈, 아드리안나 우가르테
줄리에타 크리에이티브 에디션 (1000장 넘버링)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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