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질투는 나의 힘

울프팩 2006. 3. 20. 11:09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이다.
이 시에서 제목을 딴 박찬옥 감독의 데뷔작 '질투는 나의 힘'(2002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똑같은 남자에게 과거의 애인과 현재 마음속에 두고 있는 여인을 빼앗기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연애담 속에 맺어지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미묘한 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비단 연인관계뿐 아니라 연애의 당사자들을 둘러싼 주변사람들과 관계도 놓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렸다.

언뜻 보면 사건 자체가 황당하고 주변인들과 벌어지는 뜬금없는 이야기들은 박 감독을 '여자 홍상수'처럼 보이게도 한다.
그만큼 박 감독 역시 사람들을 바라보는 자기 시각이 있다는 증거다.

즉 자기 색깔로 영화를 만들 줄 아는 감독의 연출력이 뛰어나다.
다만 일부 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흠이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떨어진다.
윤곽선이 두껍고 잡티와 스크래치가 보인다.

야외 장면에서 색도 바래 보인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서라운드 효과를 느낄만한 부분이 거의 없다.

부록으로 박 감독과 봉준호 감독, 박 감독과 배우들 등 두 편의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삭제장면 등이 들어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봉준호 감독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는 유독 등장인물의 스탠드 샷이 많다. 왜 그리 서있는 걸 좋아할까.
수의사 출신인 배종옥이 개의 제왕절개를 하는 장면이다. 이런 식의 첫 만남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이한 만남이다. 순대처럼 생긴 개의 자궁은 가짜로 만든 모형이다.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빛과 음영의 조화를 잘 살렸다. 박해일이 다른 남자 때문에 변심한 애인을 만나는 장면.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박해일의 옛 애인은 배종옥이 1인 2역을 했다.
박해일을 대책 없이 좋아하는 하숙집 딸을 연기한 서영희. 배역 때문에 고심하던 박 감독은 우연히 연극 팸플릿에서 서영희를 보고 오디션을 제안했다.
기다랗게 늘어앉은 회식장면이나 노래방 씬 등은 홍상수의 앵글을 생각나게 한다. 다만 홍상수의 앵글이 배우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반면 박 감독은 약간 높거나 낮다.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도 홍상수 영화와 비슷하다. 유부남과의 정사를 거리낌 없이 생각하는 여기자(배종옥)나 애인과 아내를 별개로 생각하는 바람둥이 편집장(문성근)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다.
박해일이 연기한 주인공도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 과거의 애인을 빼앗아간 남자 주위를 탐색하듯 집요하게 맴돈다. 결코 그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 맹목적인 추종을 하는 것도 아닌 그저 관찰만 할 뿐이다. 참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주인공은 급기야 자신이 좋아했던 여인들을 두 번씩이나 가져간 편집장의 집에서 동거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의 행동 때문에 편집장의 딸에게 접근하는 이 장면도 해석이 분분하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복수라는 해석이 제일 많았는데, 박 감독은 보는 사람의 마음이 복수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 결코 복수는 아니라고 못밖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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