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차례로 익사시키기

울프팩 2011. 1. 16. 23:25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난해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잔뜩 벌어진다.

그러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작품관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이야기와 뛰어난 영상, 그리고 감성을 파고드는 음악이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차례로 익사시키기'(Drowning By Numbers, 1988년)도 마찬가지다.
일단 제목부터 범상찮다.

세 모녀가 연인인 남자들을 차례로 물에 빠뜨려 죽이는 내용이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거대하고 복잡한 퍼즐이다.

그렇다보니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는데, 이 작품을 즐기는 비결이 있다.
바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그대로를 느끼는 방법이다.

실제로 그리너웨이는 작품의 전체적 구성보다 프레임의 완성도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미술학도였던 그는 스스로도 "영화로 일하는 화가"라고 말했을 만큼 화가의 시각에서 접근한다.

따라서 순간 순간 눈에 보이는 탐미적인 영상이 그리너웨이 작품의 최대 선물이다.
그 속에서 언뜻 스치는 욕망과 집착, 사랑 등이 보인다면 부산물로 가져가면 된다.

최근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은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한다.
화질은 엉망이다.

그리너웨이 작품은 색감이 뛰어나기로 유명한데, 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아 탈색된 느낌이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무하다.

<파워DVD로 순간 포착한 DVD 타이틀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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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너웨이 감독의 작품은 자기 색깔이 뚜렷해 좋다. 약간은 장난같으면서도 무언가 심오한 메시지가 숨어있을 듯한 영상과 이야기는 관객을 때로 고통스럽게 만들고, 때론 지적 유희의 쾌감에 빠지게 한다. 언제나 일관된 그만의 작품 세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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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제목이 말해주듯 숫자에 관한 영화다. 1부터 100까지 별자리 이름을 외며 줄넘기를 하는 소녀가 등장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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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프레임마다 1부터 100까지 숫자 중 일부가 화면 곳곳에 숨어 있다. 하지만 숫자는 맥거핀이다. 즉, 관객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장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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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온갖 숫자 뒤에 감춰진 세상사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어했는 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삶은 온통 숫자투성이지만 본질은 결국 숫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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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가득 채운 미장센느를 보면 영화가 아니라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심지어 바닥에 흩어진 사과조차도 전체 구도 속에 제 위치를 제대로 찾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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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이 그러하듯 그리너웨이 감독도 벌거벗은 육체에 대해 자유롭다. 성에 대한 묘사가 거침이 없다보니 헤어누드 또한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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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너웨이 감독의 작품은 정물화같은 프레임에 있다. 한땀 한땀 바느질로 수를 놓듯 정성들인 프레임으로 커다란 이야기를 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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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보니 DVD 타이틀의 탈색된 색감이 더욱 아쉽다. 깨끗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블루레이로 복원됐더라면 영롱한 색채가 제대로 표현됐을텐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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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국 서포크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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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을 한 폭의 캔버스로 생각했기에 구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듯 싶다. 그래서 인물이 한 켠으로 밀려나도 전체 구도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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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너웨이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특히 그의 모든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한 마이클 니먼이 이 작품에서도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다. 특히 살인 장면에서는 모짜르트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2악장이 쓰여 영상에 묘한 슬픔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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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상을 보면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면 위와 아래를 동시에 잡아 그로테스크한 영상을 만들었다. 마치 달리의 그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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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프레임에서 커다란 공간감을 느끼게 만드는 열린 영상. 보는 이는 배우의 눈과 동작을 따라 보이지 않는 공간까지 머리 속에서 그리게 된다. 한마디로 영상의 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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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온통 상징적인 메타포로 가득하다. 촬영은 사샤 비에르니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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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100이 끝나면 몇 사람의 죽음을 안고 영화도 끝이 난다. 이 작품은 88년 칸 영화제 예술공헌상을 수상.

모짜르트 "Sinfonia concertante, 2악장" 막심 벤게로프, 로렌스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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