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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최후의 증인(블루레이)

울프팩 2017. 7. 3. 20:38

국내 추리소설계의 대부로 통하는 작가 김성종은 교도소에서 최고 인기 작가다.
문학성이 뛰어나거나 추리기법이 기발해서가 아니라 아주 선정적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통속작가에 가까운 그가 쓴 장편소설 '일곱개의 장미송이' '나는 살고 싶다' '백색인간' 등을 보면 성적인 묘사가 아주 세세하고 폭력적이다.
'여명의 눈동자'도 마찬가지인데, 드라마가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송지나가 각색을 잘 한 덕이다.

그나마 문학적으로 인정을 받는 작품이 바로 '최후의 증인'이다.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이 작품은 한국전쟁에 얽힌 사람들의 비극과 복수를 다뤘다.

이를 33년 전에 영화로 만든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1980년)은 저주받은 걸작이다.
이 감독 특유의 박력있는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원작을 훌륭하게 영상으로 재현한 이 작품은 서슬퍼런 군사정권 아래서 정부의 혹독한 검열로 154분의 상영 시간 중 무려 1시간 가까이 잘려 나갔다.

그 바람에 이야기 전달도 제대로 되지 않을 만큼 영화는 만신창이가 됐고, 명보극장에서 열흘 남짓 상영하다가 간판을 내렸다.
오죽했으면 이 감독은 개봉 당시 영화를 보다가 내 작품이 아니라며 박차고 나갔다.

그렇게 잊혀졌던 영화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우연히 잘려 나가지 않은 원본이 발견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2002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재상영된 원본은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고, 박찬욱 오승욱 감독 등은 최고의 걸작이라고 극찬을 했다.

이 영화가 뒤늦게 재평가 받은 것은 당시 시대상을 암울한 이야기와 영상 속에 잘 녹여냈기 때문이다.
미스테리 추리극을 따르면서도 이념갈등의 족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이를 적절히 이용해 돈벌이와 권력을 휘두르는 세도가들, 여기 짓눌린 서민들의 삶을 올곳이 그렸다.

액션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이 감독 답게 이를 직선적인 영상으로 표현했다.
즉 군더더기 없이 시간을 뛰어넘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과감한 편집과 투박할 정도로 원경과 근경을 뛰어넘는 영상은 이 감독 특유의 액션영화처럼 박력이 넘친다.

특히 술집에서 오형사를 연기한 하명중이 펼치는 독특한 싸움 장면과 발사되는 총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쓰러지는 사람을 연속해서 보여주는 무덤가 결투 장면은 무협영화나 서부극을 보는 것처럼 호쾌하다.
더불어 로드무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서울 횡계 구례 설악산 등 주인공을 따라 전국을 돌며 담은 영상은 30여년 전 이 땅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정윤희다.
그는 당대 최고 미녀답게 어떤 옷을 입든, 어떤 환경에 놓이든 미모가 찬연하게 빛난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주인공 역을 잘 소화한 하명중과 이대근, 최불암의 연기도 좋았다.
최근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과거 출시된 DVD 타이틀과 동일한 삭제가 거의 없는 완전판이다.

 

거의 완전판이라고 하는 이유는 일부 잘려나간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감독 기억에 따르면 실루엣으로 처리된 정윤희의 뒷모습 나신과 공문서 열람을 위해 형사가 공무원에게 뒷돈을 주는 장면 등 3분 가량이 정부 검열서 삭제됐다.


당시 정부 검열은 원본인 네거티브 필름을 잘라 버렸기 때문에 해당 커트는 찾을 길이 없다.

1080p 풀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DVD 타이틀과 비교하면 깜짝 놀랄 만큼 좋다.

37년 전 작품인 만큼 최신작 같은 디테일과 선예도를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과거 DVD 타이틀에서 보이던 각종 잡티와 필름 손상 흔적이 물로 씻은 듯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최대한 명암비도 개선하고 디테일을 살려내 DVD 타이틀에서 제대로 묘사되지 않던 어두운 부분 등도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다.

 

2장으로 구성된 블루레이 타이틀의 경우 DVD 타이틀도 함께 수록돼 있으니 화질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음향은 DTS HD MA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박찬욱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 이두용 감독과 오승욱 감독 및 주성철 씨네21 편집장의 음성해설 등 2편의 음성해설이 들어 있다.

 

두 편의 음성해설은 모두 블루레이 타이틀을 위해 새로 녹음했다.

과거 DVD에 수록된 음성해설은 DVD 타이틀에 따로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주인공 오형사를 연기한 하명중. 고 하길종 감독의 동생이다. 촬영은 정일성 촬영감독이 맡았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방석집 골목. 이 감독은 청량리로 기억한다.

지금은 사라진 버스 차장의 추억.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버스 차장이 있어서 사람들도 우겨넣고 버스비, 나중에는 토큰과 회수권 등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보기 힘든 꽃상여. 이 장면은 우연히 상여를 마주쳐 촬영하게 됐다. 이 작품은 1979년 5월부터 1980년 3월까지 촬영을 했고 1980년 11월에 개봉했다.

여학교 선생을 연기한 한혜숙. 당시 한혜숙은 드라마 '토지'의 주인공 서희 역을 맡아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이 작품은 실내 세트 촬영이 없다. 모두 실제 사람이 사는 집에 가서 촬영했다. 빈한한 주거 환경을 보면 그 시대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하고 조악했는 지 알 수 있다.

이 감독은 원래 2시간 37분으로 편집을 했다. 블루레이는 이 가운데 정윤희의 실루엣 나신과 공무원이 형사에게 뒷돈을 받는 장면 등 3분이 검열서 잘린 2시간 34분 완전판을 담았다.

37년 전 강원 횡계 모습.

당대 최고의 미녀였던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와 함께 1970년대 트로이카였지만 단연 정윤희가 독보

적이다. 이 감독은 정윤희가 고전적인 한국 여인의 미모를 갖고 있어서 섭외했다고 밝혔다.

지리산에 남은 북한군 부대장을 연기한 최성호. 지리산 장면은 설악산에서 찍었다.

총알을 아끼기 위해 격살, 즉 때려 죽이는 장면. 북한군 부대장은 죽기 전에 딸에게 그동안 빼앗은 금은보화 등 재물을 숨긴 지도를 남긴다. 비극은 바로 이 지도에서 시작된다.

반공청년단장을 연기한 이대근. 돈에 눈이 먼 비열한 인물로 나온다.

전라도 구례에 있는 폐교를 사서 교실 밑에 북한군 잔당이 숨어 있는 마루 세트를 만들어 촬영. 폐교는 전투 장면을 찍으며 전소됐다.

서울 창신동 꼭대기에서 찍은 장면. 당시 달동네에는 연탄이나 물건을 져나르는 지게꾼을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요강도 많이 사용했다.

다 쓰러져가는 초막은 실제 노부부가 사는 거처를 빌려서 찍었다. 1970년대 초중반만 해도 서울에 집이 없어서 땅굴을 파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의 서울아산병원 자리에 토굴을 파고 살던 사람 집에 직접 가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사실이다.

살인 누명을 쓴 피고를 봐주는 대가로 피고의 부인에게 몸을 요구하는 검사 역할은 한지일이 연기. 한지일의 예명은 한소룡이었다. 신상옥 감독이 한국에 이소룡 같은 액션배우가 되라고 지어준 예명이다.

검사가 여인에게 몸을 요구하는 이 장면에서 검은 그림자로 처리된 정윤희의 나신이 검열에서 잘렸다. 

이 영화는 현장감 넘치는 소리를 내기 위해 한 달 동안 후시녹음을 했다. 당시 녹음 작업은 배우 양택조가 총지휘를 했다.

형사에게 장부를 보여주는 공무원이 주위를 둘러 보며 눈치를 본다. 영화만 보면 왜 그러는 지 쉽게 이해할 수 없는데, 형사가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장면이 잘렸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작품 개봉 전에 누군가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청와대에 투서를 해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뇌물 받는 공무원, 성상납을 요구하는 검사, 북한군을 인간답게 그린 장면 등이 문제가 됐고 결국 검열에서 난도질 당했다.

강원도 횡계에서 찍은 장면. 이 감독은 영화 분위기를 위해 일부러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을 선호했다.

살인누명을 써도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할 만큼 천성이 착하고 우직한 사내로 나온 최불암.

이두용 감독은 난도질 당한 작품에 얼마나 한이 맺혔는 지 지금도 당시 검열관 이름을 모두 기억한다고 한다.

배우들, 특히 하명중의 몸짓이나 표정 등이 요즘 배우들과 비교하면 과장됐다. 당시 연기 스타일의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

막판 최불암이 걸어가는 곳은 지금의 암사동이다. 건너편 아파트가 보이는 곳은 워커힐이 있는 광나루.

독특하게도 유서를 창으로 처리했다. 이 감독은 원래 피 토하는 듯한 목소리의 남자를 원했으나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해 국창인 김소희가 창을 하고 안숙선 이생강이 반주를 했다.

산골 움막에 사는 아낙치고는 너무 아름답다. 정윤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촬영하는 바람에 흰머리와 검은 머리를 자주 바꾸면서 이 감독 지시로 머리에 검은 구두약을 발랐다가 덧나서 고생을 했다.

154분이 짧게 느껴질 만큼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2001년 배창호 감독도 같은 원작을 '흑수선'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했다.

최후의 증인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최후의 증인 (2Disc)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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