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퍼니시먼트 파크

울프팩 2010. 12. 17. 01:50

1980년대 초반, 지금은 사라진 '스크린'이라는 영화잡지가 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스크린'은 각종 영화 정보에 목말라 있던 당시 고교생의 갈증을 적셔주는 좋은 정보의 샘물이었다.

그때 스크린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문제작 시리즈를 연재했는데, 그때 눈에 띈 영화가 바로 피터 왓킨슨 감독의 '퍼니시먼트 파크'(Punishment Park, 1971년)였다.
영화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감독이 가상으로 그린 1950년대 미국, 정부는 반체제 인사들을 잡아다가 형식적인 재판을 거친 뒤 징벌원(punishment park)으로 보낸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징벌원에 갇힌 사람들은 약 100km 떨어진 목표점에 도달하면 풀려나고 그렇지 못하면 뒤쫓는 군경의 총에 맞아 죽거나 잡혀서 감옥에 가야한다.

폭압적인 더위 속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그야말로 인간 사냥이다.
무자비한 경찰의 진압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어디서 본 이야기 같다.
끊임없이 중첩되는 영상은 80년대 전두환 정권 아래 벌어진 삼청교육대다.
그야말로 우리는 영화보다 잔혹한 역사를 갖고 있었다.

재판과정에서 반체제 인사들과 정부측이 벌이는 논쟁은 영화 제작시점인 70년대 미국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법정에 선 피의자들은 반전 시위, 체제 저항적인 히피 문화와 록 음악 등 기성세대의 권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70년대 시대 정신의 상징이며, 이들로부터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부측은 더할 수 없이 권위적이고 폭압적이다.

피터 왓킨슨 감독은 이를 88분의 영상 속에 밀도있게 녹여넣었다.
메시지 전달을 위해 감독이 택한 방법은 다큐멘터리 기법이다.

양 측을 오가는 교차 인터뷰와 들고찍기, 접사로 묘사한 영상은 마치 드라마가 아닌 실제 뉴스 화면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작품은 페이크 다큐의 원조로 꼽히기도 한다.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윤곽선도 뭉개지고 색도 바랬지만,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작품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무하다.

<파워DVD로 순간포착한 DVD 타이틀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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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 땅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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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측과 피의자에 대한 자막 설명이 마치 뉴스 화면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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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 흔한 음악조차 없이 무미건조한 영상으로 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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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원에 투입된 경찰들은 사냥하듯 반체제 인사들을 추격해 학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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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피의자의 인터뷰를 교차 편집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이 특징. 특히 무기를 자세히 설명하는 경찰의 모습과 피의자들의 항변이 번갈아가며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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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감독까지 한 피터 왓킨스는 1935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BBC에서 만든 '워 게임'으로 1967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상을 받을 만큼 다큐물에 강하다. BBC가 '워 게임'을 방영금지하자 영국을 떠나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한 그는 페이크 다큐의 창시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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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니.' 영화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굳이 성경 구절을 빌리지 않아도, 참된 이치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청춘의 한때를 보냈다. 그 시절 무섭도록 서슬퍼렇던 권력이 스러져 간 것을 보니, 믿음이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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