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울프팩 2005. 12. 16. 22:00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ぽんぽこ, 1994년)은 인간의 자연 파괴를 너구리의 입장에서 다룬 문명비판적 작품이다.
1960년대 일본의 갑작스러운 개발정책으로 숲이 파괴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너구리들이 집단회의 끝에 변신술을 사용해 인간들에게 맞서는 내용이다.

비록 희화화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메시지만큼은 어느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무겁고 진지하다.
덕분에 1994년 앙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장편 영화상을 받았지만 같은 지브리 스튜디오 소속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 비해 내용이 대중적인 편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좀 늘어지는 감이 든다.
어찌 보면 그런 점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대비되는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勲) 감독의 뚜렷한 특징이요 개성이 될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판타지와 이상에 집착한다면 다카하타 이사오는 현실을 직시하는 편이다.
그는 주로 '첼로키는 고슈' '반딧불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등 사람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동물의 관점에서 사람을 바라봤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다른 작품만큼 좋아하지는 않지만 엔딩에 흐르는 샨샨 다이후의 주제가는 좋아한다.
16 대 9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색상도 괜찮고 화질도 무난하다.

샤프니스가 높지 않지만 잡티나 스크래치는 전혀 없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스테레오를 지원한다.

아쉬운 것은 부록.
한국어 더빙 현장과 텍스트로 된 작품 정보, 그림 콘티 외에 이렇다 할 내용이 없는데도 2장의 디스크로 나눈 이유가 궁금하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풍경화를 보는 듯한 사실적인 그림체. 정겹고 푸근하다.
인간의 관점이 아닌 너구리의 관점으로 들어가면 그림체는 희화화된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풀어가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렇지만 다카하타 이사오는 일본의 풍물, 관습, 설화 등을 작품에 잘 살린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특징이자 그들의 강점이다.
마치 구로자와 아키라의 '꿈'을 보는 것 같은 장면. 백귀야행은 일본, 중국 등 한자문화권에 두루 퍼진 전설.
여우가 살아남기 위해 사람으로 둔갑해 도시에서 룸살롱을 차린 장면. 여우와 여자를 동일시하는 정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양권이 비슷하다.
급기야 너구리들은 인간들과 일대 결전을 벌인다. 넉넉한 배경과 안정적인 앵글이 객관적인 느낌을 준다.
인간에게 동화되느냐, 숨어 사느냐로 너구리들이 고민하는 결말은 일말의 서글픔까지 느끼게 만든다. 1968년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이라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데뷔한 이사오 감독은 TV 만화 '빨강머리 앤' '엄마 찾아 삼만리' 등에서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일관된 작품관을 선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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