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여행

풀라의 환상적인 저녁

울프팩 2013. 4. 21. 04:30

오후 5시.
행사를 준비한 주최측에서 근사한 저녁식사를 준비했단다.

무슨 저녁인 지 물었으나 "서프라이즈"라고만 대답할 뿐 알려주지 않았다.
차를 타고 포르테 빌리지에서 칼리아리를 향해 40분 가량 달렸더니, 풀라(Pula)라는 작은 마을이 나왔다.

예쁜 집들이 늘어선 마을 입구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니 갑자기 아코디언 음악소리가 들린다.
골목 어귀에서 할아버지가 신나게 아코디언을 연주했고 양쪽에 세워놓은 스쿠터에 걸터앉은 아가씨들이 활짝 웃으며 환영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골목을 벗어나자 예쁜 성당 앞에 작은 광장이 나타났다.
여기저기 장막이 늘어선 풍경은 흡사 우리네 장터 같았다.

'이게 뭔가' 싶어 어리둥절하게 서 있자, 짜잔~ 바로 오늘의 저녁식사란다.
즉, 마을 하나를 통채로 빌려 모든 장막과 주변 가게에서 음식과 음료를 무료로 제공했다.

늘어선 장막들은 사르데냐 고유의 특산물로 만든 요리를 선보였고, 가게들은 피자 고기 아이스크림 맥주 음료 등을 무한정 무료로 제공했다.
해외 출장을 여러 번 다녀 봤지만, 이런 환상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의 저녁식사는 처음이었다.

주최측의 서프라이즈는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다.
사람들은 탄성을 발하며 맛난 음식을 찾아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단순히 음식만 먹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음식 만드는 법을 시연하며 영어로 설명을 해줬다.
즉, 맛난 음식과 더불어 그들의 문화를 보고 듣고 배우며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손으로 휘저어 만든 뒤 식용 종이에 싸서 먹는 사르데냐 엿, 연신 주물러 짜내는 순두부같은 치즈, 직접 만들어 볼 기회를 제공하는 빵, 갖가지 양념을 찍어먹을 수 있는 난부터 각종 신선한 과일까지 먹을 것 풍년이었다.

장터를 돌아보다 지쳐 가게로 들어서면 갓 구워낸 피자를 종류별로 맛볼 수 있고, 다른 가게를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지글지글 구워주는 쇠고기 꼬치구이를 들고 2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 광장을 내려다보며 식사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배가 차면 디저트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서 이탈리아 본젤라또를 종류별로 고르거나, 바에서 맥주나 음료수를 받아들고 나와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렇게 축제같은 식사를 한 뒤 산보 삼아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소로를 사이에 두고 갖가지 색깔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운치있게 만든 작은 아케이드 안쪽에는 1970년대를 연상케 하는 빈티지 장난감들을 세워놓은 장난감 가게와 은은한 종이 냄새가 풍기는 정갈한 서점이 있다.

아케이드를 빠져 나오자 또각 또각, 발굽소리와 함께 말을 탄 청년이 지나가고 그 뒤로 앙증맞은 소형차가 따라간다.

동화 같은 풍경 뒤로 또다른 광장이 동그랗게 둥지를 튼 곳에 노천 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마을 사람들은 그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느 덧 코발트빛 결정체 같던 하늘에 아스라이 황혼이 지고, 성당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그렇게 잊지 못할 저녁은 밤 9시 30분까지 이어졌고, 사람들은 다들 즐거운 추억을 가득 안고 숙소를 향해 돌아왔다.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 그것이 곧 여행의 즐거움이자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