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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피렌체, 란치의 회랑

울프팩 2017. 9. 17. 11:53

로자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라고 부르는 란치의 회랑은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에서 베키오 궁전 바로 옆에 있다.

언뜻보면 마치 베키오 궁전의 부속 건물 같은 이 곳은 벤치 디 치오네(benchi de cione)와 시모네 탈렌티(simone talenti)가 1376년부터 1382년까지 만들었다.


란치의 회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곳에 코시모 데 메디치가 부리던 독일 용병이 대기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용병을 뜻하는 란트스크네츠(Landsknechts)를 이탈리아에서는 란치케네키(lanzichenecchi)라고 부른다.

[베키오 궁전 옆에 위치한 란치의 회랑.]


여기에 부온탈렌티(bernardo buontalenti)가 지붕을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는 테라스로 바꿔 지금은 미술관이 된 우피치 궁전과 연결시켰다.

덕분에 시뇨리아 광장에서 행사가 열리면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이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있게 됐다.


란치의 회랑 역시 피렌체의 많은 건물들이 그렇듯 예술가들의 조각이 즐비한 미술관이다.

이 곳에는 첼리니, 잠볼로냐, 피오 페디 등 유명 미술가들의 조각상 15점이 놓여 있다.

[회랑 입구를 지키고 있는 두 마리의 사자. 피렌체에서는 시의 상징 동물인 사자를 마르조코라고 부른다.]


회랑 입구에는 두 마리 사자가 지키고 있는데, 왼쪽 사자는 로마제국 시대의 조각상을 옮겨온 것이고 오른쪽 사자는 1598년 훌라미노 바카가 만들었다.

원래 사자는 피렌체에서 '마르조코'(marzocco)라고 부르는 시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마르조코라는 이름은 로마제국 시절 요새였던 피렌체를 전쟁의 신 마르스에게 봉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원전 1세기 무렵만 해도 지중해 연안에 사자가 무리지어 살았다고 한다.


피렌체 사람들은 시의 상징이자 군신을 위한 마르조코가 버티고 서있는 이곳에서 침략군을 물리치기 위한 시민군을 모집했다.

두 마리 사자를 지나 회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조각상이 바로 강렬한 형상의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 청동상이다.

[첼리니가 만든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 청동상.]


페르세우스가 잘라낸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이 청동상은 베키오 다리에 동상이 있는 벤베누토 첼리니의 작품이다.

페르세우스의 머리 뒤쪽에 첼리니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잘린 목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는 끔찍한 모습의 이 청동상 역시 베키오 궁전 앞에 버티고 선 헤라클레스처럼 메디치 가문에 도전하지 말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페르세우스의 발 밑에는 죽어 넘어간 메두사의 시체가 뒹굴고 있다.

[잠볼로냐의 '사비니 여인 납치'.]


발버둥치는 여인을 번쩍 안아든 조각상은 잠볼로냐가 만든 '사비니 여인의 납치'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하고 나서 종족 보존을 위해 숫자가 부족한 여인들을 이웃국가인 사비니에 쳐들어가 납치해 왔는데 이를 묘사한 것이다.


그 바람에 사비니와 로마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로마인의 아내이자 어머니가 된 사비니 여인이 나서서 이들을 말렸다.

로마인들은 납치한 사비니 여인들을 아주 잘 대해줬고, 훗날 화해한 사비니 사람들에게 원로원 의석을 주며 대우하기도 했다.

[파트로클루스를 부축하는 메넬라우스 조각상.]


'파트로클루스를 부축하는 메넬라우스'는 트로이 전쟁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그리스군의 맹장 아킬레우스는 트로이군을 정찰하기 위해 친구인 파트로클루스를 전장에 내보냈다.


파트로클루스는 정찰에 그치지 않고 아킬레우스의 갑옷까지 입고 나가 싸우다가 헥토르의 칼에 죽고 갑옷도 빼앗겼다.

조각상은 함께 참전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우스가 벌거숭이로 죽어가는 파트로클루스를 부축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원래 기원전 3세기 페르가메네가 조각한 것을 루도비코 살베티가 복원했고 1640년 피에트로 타카가 모형을 만들었으며, 다시 1830년 스테파노 리찌가 다시 재제작했다.

원본은 피티궁에 있고 여기 서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잠볼로냐가 만든 '켄타우로스를 때려잡는 헤라클레스'.]


'켄타우로스를 때려잡는 헤라클레스' 조각은 잠볼로냐의 작품이다.

한 개의 대리석 덩어리를 깎아서 만들었다.


울끈불끈한 헤라클레스의 근육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잘 묘사됐다.

당장이라도 몽둥이를 휘두를 것처럼 자세 또한 역동적이다.

[피오 페디의 '납치당하는 폴릭세네'.]


피오 페디의 작품인 '납치당하는 폴릭세네'는 트로이 전쟁의 비극적인 일화를 담고 있다.

폴릭세네는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딸이다.


프리아모스는 오빠인 두 명의 왕자 헥토르와 트로일로스가 그리스군의 아킬레우스와 싸우다가 전사하자 무덤 앞에서 슬피 울었다.

이를 정찰나온 아킬레우스가 보고 한 눈에 반해서 청혼을 한다.


폴릭세네는 대신 전쟁을 끝내는 조건으로 청혼을 받아들였다.

이를 폴릭세네의 또다른 오빠 파리스가 몰래 엿듣고 결혼식 장소인 신전에 숨어 있다가 아킬레우스의 약점인 발뒤꿈치에 독화살을 쏴서 죽였다.

[베키오 궁전에서 내려다 본 란치의 회랑 테라스. 지붕에 해당하는 테라스는 연결된 우피치 미술관을 구경하면서 올라갈 수 있다.]


아킬레우스는 죽어가면서 폴릭세네와 파리스가 일부러 짜고 속였다고 오해해 저주를 걸었다.

트로이를 멸망시킨 그리스군이 물러가면서 폴릭세네를 제물로 바치도록 한 것이다.


조각상은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가 폴릭세네를 데려가는 장면을 담았다.

네오프톨레모스는 한 팔로 몸부림치는 폴릭세네를 번쩍 안아 들었고 그의 발 아래 오빠 파리스가 칼을 맞고 쓰러져 있다.


옆에 매달린 여인은 트로이의 왕비이자 폴릭세네의 어머니인 헤카베다.

참으로 비극적인 장면을 네 사람의 군상을 통해 함축적으로 절절하게 묘사했다.

[란치의 회랑 상단에 하얗게 붙어 있는 4개의 조각상은 카톨릭의 4개 덕목을 의미한다.]


란치의 회랑 상단에는 4명의 여신이 앉은 작은 조각상이 붙어 있다.

아그놀로 갓디가 만든 각각의 조각상은 카톨릭의 4가지 덕목인 인내, 절제, 정의, 신중을 상징한다.


회랑을 마주보고 섰을 때 맨 오른쪽부터 불굴의 의지와 힘을 나타내는 방패와 기둥, 사자가 섞인 인내, 한쪽에서 다른쪽 병으로 물을 따르며 치우치지 말라고 주문하는 절제, 양 손에 각각 검과 저울을 든 정의, 그 다음이 절제 순이다.

정의의 경우 손 부분이 깨어져 나가 들고 있는 것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란치의 회랑은 입구는 물론이고 안쪽 벽면을 따라 계단식으로 조성돼 관광에 지친 사람들이 다리 쉼을 하기 좋다.

특히 여름철 더운 날씨에 따가운 볕을 피하기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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