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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피렌체의 베키오다리

울프팩 2017. 9. 9. 23:53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 베키오 다리는 두오모와 함께 피렌체의 상징 중 하나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돼 '오래된 다리'라는 뜻의 폰테 베키오라는 이름이 붙은 이 다리는 독특하다.


피렌체를 관통하는 아르노 강 위에 놓은 10개 다리 중에 유일하게 다리 위에 상점이 있다.

어찌보면 전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의 다리이기도 하다.

[피렌체의 상징 중 하나인 폰테 베키오.]


다리 위에 집이나 상점을 지은 도시는 피렌체 뿐만이 아니다.

과거 파리의 센 강 위에 놓은 다리에도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으나 퐁네프 다리 이후 그런 풍경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베키오 다리는 지금도 다리 위에 사람이 드나드는 상점이 있다.

다리 양편으로 금은방들이 들어차 오가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다리 위에 금은방들이 들어서 있다.]


그 풍경이 하도 독특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수 많은 관광사진에 자주 등장한다.

원래 이 다리는 로마시대인 6세기경에 처음 건설됐다.


그러나 1117년 홍수로 무너진 뒤 1333년 대홍수 때 떠내려갔다.

이후 1345년, 타데오 가디가 다시 만들어 1350년에 완공됐다.

[다리 중간쯤에 위치한 동상의 주인공은 16세기 유명한 금세공 장인 겸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1500~1571년)이다.]


다리에 상점이 들어선 것은 1442년.

당시 피렌체 통치자들은 도심과 주거지역으로부터 냄새나는 정육점을 분리하기 위해 다리 위에 상점을 만들어 정육점들을 이곳으로 옮겼다.


정육점 주인들은 점차 공간을 넓히기 위해 나무 기둥을 더 설치해 방을 만드는 등 불법개조를 하면서 독특한 다리 모양을 형성했다.

그러던 중 정육점들이 일제히 금은방으로 바뀐 것은 페르디난도 1세가 토스카나 지방을 다스리던 1593년이었다.

[날이 더워 그런 지 베키오 다리 밑을 흐르는 아르노강의 녹조가 심하다.]


그는 다리를 오갈 때 악취가 나고 시끄럽다는 이유로 정육점들을 내몰고 금세공업자들이 상점을 차리게 했다.

여기에 2층을 만든 것은 코시모 1세 대공이다.


남쪽에서 북으로 다리를 건너다보면 오른편 상점 위에 2층이 있다.

그런데 2층은 사람이 살지 않는 독특한 공간이다.

[베키오 다리 한쪽 2층에 위치한 바사리 회랑.]


이 곳은 코시모 1세 대공의 비밀통로였다.

그는 피렌체 사람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폭정을 일삼았다.


그 바람에 시민들의 공격을 우려해 거주지였던 피티 궁전에서 집무실이 있는 베키오궁전까지 이어지는 1km 길이의 전용 비밀통로를 1565년에 만들었다.

이를 통해 유사시 다른 쪽으로 재빠르게 피하기 위한 일종의 급행 도주로였다.

[다리 위 상점 중 한 곳의 이름이 하필 제 2차 세계대전 때 이곳을 점령한 나치 독일의 잠수함이었던 유보트다. 불편할 법도 한데 피렌체 시민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그 중 일부 구간이 바로 베키오 다리 상점의 2층이다.

이 통로는 설계자인 유명한 건축가이자 미술가인 바사리의 이름을 따서 '바사리 회랑'이라고 부른다.


바사리 회랑은 밖에서 안을 볼 수 없지만 안에서는 밖을 내다보며 사람들의 동태를 살필 수 있었다.

특히 다리 중간쯤에 위치한 커다란 창을 통해 아르노강의 풍경과 다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살필 수 있다.

[베키오 다리 위 상점들은 관광객이 다닐 시간이 되면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한 묵직한 나무 덧문을 떼어내고 영업을 시작한다.'


바사리 회랑은 미술품 전시공간이기도 하다.

메디치가문이 사모은 숱한 미술품의 일부가 바사리 회랑에 걸려 있어서 1866년까지 일반에게 공개했으나 지금은 공개하지 않는다.


영화로도 제작된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를 보면 주인공 일행이 바사리 회랑을 통과해 달아나는 대목이 나온다.

유명한 게임 '어쌔신 크리드2'에서는 에지오가 이 다리를 오가며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베키오 다리 위 금은방 중 한 곳의 내부 모습. 안쪽에 보이는 묵직한 금고가 인상적이다.]

 

게임 속에서는 금 세공업자들이 들어서기 전이어서 상점들이 얕으막한 단층들이며 그마저도 많지 않다.

상점과 비밀통로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베키오 다리의 풍경은 참으로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특히 저녁 노을이 지거나 환하게 붉을 밝힌 야경이 아주 아름답다.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 덕분에 이 다리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폭파 위기를 면했다.

 

1944년 이탈리아를 장악했던 나치 독일은 연합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모든 다리를 끊었다.

그런데 당시 나치 독일의 피렌체 주둔군 사령관이었던 게르하르트 볼프 장군은 베키오 다리만큼은 폭파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베키오 다리에서 바라본 산타 트리니타 다리.]


전후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기려 볼프에게 피렌체 명예시민 자격을 부여했다.

전쟁통에서도 무사했던 다리는 1966년 피렌체를 휩쓴 대홍수때 크게 부서졌다가 나중에 복구됐다.

 

베키오 다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산타 트리니타(Ponte Santa Trinita)다리다.

거룩한 삼위일체라는 뜻의 이 다리는 베키오 다리에서 가깝다.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바라본 베키오 다리.]


이 다리 또한 베키오 다리 못지 않게 피렌체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내에서 아름다운 다리로 꼽힌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다리는 르네상스시대 거장이었던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


원래 1252년 프레스코발디 가문이 다리 북쪽편에 위치한 산타 트리니타 성당의 이름을 따서 나무 다리를 놓았는데, 사람들이 아름다운 강 풍경을 보기 위해 몰려들면서 1259년에 무너졌다.

이후 다시 돌로 지었는데 지금과 같은 다리 모습은 1557년 재공사때 형성됐다.

[산타 트리니타 다리는 북쪽의 산타 트리니타 광장과 남쪽의 프레스코발디 광장을 연결한다.]


그때 코시모 1세 대공이 다리 재건축을 명하면서 미켈란젤로에서 설계를 맡겼고, 이를 토대로 암만나티가 시공해 1571년에 완공했다.

커다란 3개의 아치가 받치고 선 다리 모양은 미켈란젤로의 설계다.


다리 남북단 입구에는 4계절을 나타내는 4개의 조각상이 서 있다.

하지만 훌륭한 미술품이나 다름없는 이 다리는 1944년 8월 나치 독일군이 철수하며 폭파해 버렸다.

[다리 남단과 북단에는 4계절을 상징하는 4개의 조각상이 서 있다.]


이를 1958년 5월 원래 모습대로 다시 놓았다.

아름다운 모양 뿐 아니라 이 다리는 애닲은 사연도 갖고 있다.


단테가 평생 흠모한 마음 속 연인이었던 베아트리체를 9세때 처음보고 10년 뒤 다시 만난 장소가 바로 산타 트리니타 다리다.

또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아르노 강을 내려다 보며 대화를 나눈 장소도 이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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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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