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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천 DVD / 블루레이

혐오

울프팩 2017. 4. 23. 18:09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혐오'(Repulsion, 1965년)는 카트린느 드뇌브가 이런 영화를 찍었나 싶을 만큼 그의 이미지를 바꿔놓은 작품이다.

'쉘부르의 우산'에서 청순 가련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 그가 이 작품에서는 선병질적인 우울과 신경증에 시달리다가 자기 파멸로 치닫는 공포의 여인을 연기한다.

 

'쉘부르의 우산'에서 매력 포인트였던 하얀 피부와 금발머리는 이 작품에서는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키는 나약한 이미지와 비정상적인 파괴의 본능을 내재한 몬스터의 느낌을 전달한다.

그를 이렇게 바꿔놓은 것은 전적으로 폴란스키 감독의 그로테스트한 연출과 영상 구성 덕분이다.

 

작품의 내용은 제목처럼 병적으로 남성과 접촉을 꺼리는 여성의 이야기다.

애인과 키스를 하고 나서도 입술을 물로 씻어내고, 남자의 런닝 셔츠나 칫솔 조차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만큼 그의 남성 혐오는 병적이다.

 

하지만 그의 남혐은 철학적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사유적인 측면이 아닌 육체적인 혐오다.

아마도 어려서 성적 학대에 시달린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만큼 병적이다.

 

그렇다 보니 그의 남혐은 사회와 격리돼 스스로 움츠러들게 만들고 결국 파괴적인 행위로 치닫게 된다.

폴란스키 감독은 이를 흑백영상으로 처리해 어둡고 음험한 분위기로 몰고 간다.

 

이분법적인 흑과 백은 다채로운 색상의 컬러 영상보다 훨씬 음모적이고 공포스런 느낌을 준다.

이를 위해 폴란스키 감독은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를 찍은 길버트 테일러 촬영감독을 기용했다.

 

그의 거칠면서도 명암 대비가 확실한 영상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길버트 테일러는 빛을 받은 곳과 어두운 그림자에 묻힌 부분의 명암대비를 명확하게 살려 무서운 상황과 긴장감을 강조했다.

 

더우기 폴란스키 감독의 요구에 따라 극단적 클로즈업과 앵글을 비튼 영상 등으로 기괴한 느낌을 자아낸다.

극도의 혐오증을 보이는 여인의 병적인 심리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지만 상황 자체가 편한 영화는 아니다.

 

폴란스키 감독은 공포영화를 겨냥했지만 기괴한 심리극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그만큼 보는 사람의 취향을 탈 수 있다.

 

그럼에도 드뇌브의 뛰어난 연기와 테일러의 정갈한 흑백 영상은 높이 살 만 하다.

16 대 9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제작과정, 갤러리, 촬영감독의 스케치노트, 배우와 감독의 프로필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병적인 남성 혐오를 보이는 여주인공을 연기한 카트린느 드뇌브. 폴란스키는 이 작품의 흥행을 통해 번 돈으로 드뇌브의 언니인 프랑수와즈 도를레악이 주연한 '막다른 골목'을 만들었다.

촬영은 런던의 햄머스미스 다리 등에서 했다. 이 작품은 1965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받았다.

3명의 사내가 마치 여인을 조롱하는 듯한 음악을 연주하며 길을 건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폴란스키가 영어로 만든 첫 영화다.

폴란스키 감독은 마음에 병을 안고 사는 아는 사람의 딸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구상했다.

병들어 가는 여인의 마음 같은 토끼고기 구이. 사실적인 영상을 추구했던 폴란스키 감독은 실제로 토끼고기를 썩혀서 사용했다. 그러나 촬영이 힘들 정도로 냄새가 너무 심해서 결국 모형으로 교체했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은 이 작품의 제작을 거부했다. 폴란스키 감독은 결국 소프트포르노와 B급 영화를 주로 만들던 컴튼 필름을 찾아가 이 작품을 제작했다.

당시 영화 배급과 극장을 운영하던 컴튼 필름은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를 통해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여러 배우가 나오기는 하지만 드뇌브의 1인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당시 드뇌브는 무명에 가까운 신인이었다. 그는 이 작품으로 미 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제작사는 지명도 있는 배우를 여주인공으로 원했으나 폴란스키 감독이 드뇌브를 고집했다.

폴란스키는 주장이 강해서 제작진 및 스탭들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특히 완벽을 추구한 그는 세팅에 시간이 오래 걸려 제작자들의 불만을 샀다.

벽에서 손이 튀어 나오는 장면은 콘돔제조업체인 듀렉스사에서 구한 질긴 고무를 이용해 연출했다.

마지막 사진 한 장은 여러가지를 유추하게 만든다. 소녀의 기괴한 표정을 통해 어려서 성적 학대를 당했을 것이란 추측을 하게 만든다.

혐오
감독 : 로만 폴란스키 / 배우 : 카트리느 드뇌브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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