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비추천 DVD / 블루레이

울프팩 2005. 8. 19. 13:27

김기덕 감독은 '성스러운 피'를 만든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나 '집시의 시간'을 만든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을 좋아했다.
이유는 "영화란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작품은 보편적 시각으로 접근하면 더없이 낯설고 기이하다.
그의 12번째 작품 '활'도 마찬가지다.

바다 위에 폐선처럼 떠있는 배 위에서 생활하는 노인과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두 사람에 대한 일체의 설명 없이 그들의 생활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들에게는 활이 유일한 오락기구요, 악기이자 무기요, 생활의 수단이 된다.

김 감독이 활을 주요 도구로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 시위처럼 팽팽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나타내듯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기 전에 "팽팽함은 강인함과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라는 문구가 나타난다.

'빈 집' 이후 얌전해진 김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잔혹하거나 폭력적인 장면을 거의 넣지 않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처럼 사색적이고 선문답 같은 내용 속에 펼쳐지는 고즈넉한 영상은 그동안 김 감독의 작품을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낯선 느낌을 준다.

 

한편으로는 너무 심심한 느낌이어서 '악어' '나쁜 남자' ''에서 보여준 강렬함이 그립기도 하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잡티와 스크래치가 보이고 간혹 지글거리는 장면도 있다.
그렇지만 클로즈업의 해상도는 괜찮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서라운드 효과가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시위에 둥그런 통을 끼워 소리를 내는 희한한 활 악기는 김 감독의 발명품이다. 김 감독이 직접 만들었으나 자신도 소리가 날 줄 몰랐다고. 해금과 비슷한 소리가 난다.
노인과 소녀에게 활은 아름다운 악기이자 피를 부르는 무기다.
또 활점을 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소녀가 뱃전에서 그네를 타는 사이로 노인이 화살을 날리고, 화살이 꽂힌 과녁을 보고 소녀가 미래의 운명을 읽는다. 아주 위험천만한 점이다.
노인과 소녀의 집인 목선은 김 감독이 인천의 폐선 집합소에서 구했다.
바다 위로 해가 떨어진다. 참으로 서정적인 영상. 영종도 앞바다에서 17일 동안 촬영했다. 영화 속에 흐르는 해금 연주는 강은일의 '오래된 미래'라는 음반에서 따왔다. 음악이 영상과 너무 잘 어울렸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외롭기도 한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은 장차 결혼할 사람들이다
낚싯바늘만 보면 '섬'이 떠오른다. 순간 섬뜩했던 장면.
노인과 소녀 사이에 대학생이 끼어들며 두 사람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소녀 역의 한여름은 '사마리아'에 출연했던 서민정이다. '상두야 학교 가자'라는 드라마에도 출연.
소녀가 떠나려 하자 절망감에 자살을 시도하는 노인. 낯익은 이 노인은 KTF 016 CF에서 젊은 교수에게 배우는 늙은 학생으로 나온 배우 전성환이다.
김 감독은 물과 친하다. '섬' '악어' '야생동물보호구역' '해안선' 모두 물이 등장한다.
영혼과 정사를 치르고 기진한 소녀. 김 감독의 특징이 잘 나타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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