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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인 조르바 (블루레이)

울프팩 2014. 9. 14. 11:06

우락부락한 외모를 지닌 거구의 안소니 퀸은 할리우드에서 대부분 조연배우로 활약했다.

그런 그가 주연으로 이름을 떨친 작품이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과 마이클 카코야니스 감독의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 1964년)다.

 

그러고보면 안소니 퀸은 할리우드보다 유럽에서 더 진가를 인정받은 배우다.

'희랍인 조르바'는 그리스를 대표하는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작가인 카잔차키스가 제 1 차 세계대전기간 기간에 머물던 고향 크레타섬에서 만난 요르고스 조르바스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쓴 이 소설은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는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렸는데, 여기에는 조르바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완벽한 캐릭터를 창조한 안소니 퀸의 공헌이 절대적이다.

 

그는 스스로를 조르바라고 표현한 만큼 이 역할에 흠뻑 빠졌는데, 때로는 거칠며 때로는 섬세하고 때로는 자유로운 의지로 꿈틀대는 인간의 모습을 열정적인 연기로 선보였다.

무엇보다 안소니 퀸이 밝은 햇살 아래 크레타 해변을 배경으로 취한 듯 여유롭게 춤을 추는 장면은 이 작품을 대표하는 명장면이다.

 

여기에 '나바론 요새' 'Z' 등으로 유명한 그리스를 대표하는 배우 이렌느 파파스와 릴라 케드로바 등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특히 케드로바를 이 작품으로 제 37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장면을 크레타섬에서 현지 촬영했는데 흑백으로 찍었다는 점이다.

예전에 들렸던 산토리니처럼 크레타 역시 눈부신 햇살 아래 그림물감을 풀어놓은 듯 짙푸른 바다와 흰 집들이 인상적일텐데, 이를 흑백으로 찍어서 제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1080p 풀HD의 1.66 대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흑백 영상이어서 크게 흠잡을 만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음향는 DTS-HD 모노를 지원하며 부록으로 감독의 음성해설, 안소니 퀸 일대기, 또다른 오프닝과 시사회 장면 등을 담은 무성영상 등이 들어 있는데, 음성해설을 제외하고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안소니 퀸은 '길'과 더불어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작품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조르바를 연기했다. 퀸은 섬에서 만난 193cm의 파파도니스라는 사내의 외양을 많이 흉내냈다. 카코야니스 감독은 처음부터 영국 작가 역할로 알란 베이츠를 선택했다. 

멕시코 북부 치와와의 빈민촌에 살았던 퀸의 아버지는 17세때 1914년 판초 비야가 이끌던 멕시코 혁명군에 가담했다가 15세 소녀 마누엘라 오아하카를 만났다. 한 눈에 반한 그는 소녀를 설득해 함께 혁명군에 뛰어들었고, 혁명군을 실어 나르던 열차 안에서 결혼해 1915년에 안소니 퀸을 낳았다. 

퀸의 가족은 멕시코의 전쟁과 가난을 피해 미국으로 옮겼다. 퀸은 그곳에서 아버지가 들려주는 멕시코 혁명군의 모험담을 들으며 자랐으나,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숨진 뒤 어린 나이에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 됐다. 

멜리나 메르쿠리와 더불어 그리스를 대표하는 여배우 이렌느 파파스는 비운의 과부 역할을 맡아 강렬한 인상 만큼이나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줬다. 이렌느 파파스는 밴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명반 '666'에서 괴음으로 읊조린 노래 '∞'가 생각난다. 이 작품의 음악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맡았다. 

카잔차키스는 발칸전쟁 참전 경험과 1917년 크레타섬에 머물 때 만난 요르고스 조르바스의 삶을 섞어서 조르바라는 가공의 인물을 소재로 1946년 원작 소설을 펴냈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정교회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비판과 함께 이 책이 출판금지되며 파문을 당했다. 크레타섬에 묻힌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문맹인 조르바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청년 역할을 한 인물이 이 작품에 조감독으로 참여한 조지 코스마토스다. 바로 '람보2' '코브라' '툼스톤' 등 액션물을 만든 감독이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이 작품 제작을 거절했다. 카코야니스 감독은 촬영 초기 퀸이 배우로서 도가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생각해 자주 부딪쳤다. 퀸은 이 작품에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퀸은 생계를 위해 구두닦이, 권투선수, 직공으로 일했고 댄스경연대회에 나가 받은 우승트로피를 팔아 음식을 사기도 했다. 그는 언어장애를 고치기 위해 구강 수술후 극단이 운영하는 발성강좌를 듣다가 대역으로 연기를 하면서 배우를 하게 됐다. 

퀸은 세실 B 드밀 감독의 눈에 띄어 여러 작품에 출연했고 촬영장에서 만난 감독의 딸이자 여배우인 캐서린과 결혼했다. 하지만 숱한 염문으로 아내의 속을 태운 그는 1961년 이태리에서 만난 의상 담당 욜란다 아돌로리와 사랑에 빠지면서 1964년 27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이혼했다. 

원래 호텔 마담 역은 시몬 시뇨레였으나 감독이 염두에 둔 케드로바로 교체됐다. 제작자인 대릴 자눅은 해당 역할에 베티 데이비스를 고려했으나 감독의 뜻에 따랐다. 케드로바는 이 역할을 위해 영어를 배웠다. 이 작품은 1983년 뮤지컬 버전으로도 제작됐다. 

나무 운반대가 무저니는 장면은 처음에 너무 빨리 무너져 두 번 찍었다. 초판 편집본이 3시간이 넘어 일부 장면을 잘라냈다. 그때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 피아 린드스트롬이 시골처녀로 나오는 장면이 잘렸다. 

퀸은 촬영 중 발을 다쳐 막판 춤추는 장면에서 일부러 느리게 움직였다. 숱한 염문을 뿌렸던 퀸은 1997년 예전 비서였던 당시 37세의 캐시 벤빈과 세 번째 결혼을 했다. 3번의 결혼으로 9남4녀를 둔 그는 2001년 폐렴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명작에게 길을 묻다 : 그리스인 조르바 / 희랍인 조르바
희랍인 조르바 : 블루레이 [앤소니 퀸의 다큐멘터리 수록(약 44분)]
Anthony Quinn 출연/Alan Bates 출연/Mihalis Kakogiannis 감독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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