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도쿄 21

태풍이 지나가고(블루레이)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영화는 잔잔한 일상을 통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태풍이 지나가고'(海よりもまだ深く, 2016년)도 그런 영화다. 유명 작가를 꿈꾸며 사립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는 료타(아베 히로시 阿部寛)가 태풍이 닥친 날 어머니(키키 키린 樹木希林)의 집에서 헤어진 아내(마키 요코 真木よう子), 아들과 함께 보내며 일어나는 일상을 다뤘다. 료타는 한때 촉망받는 작가였지만 도박으로 돈을 날리면서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탐정 일을 하는 친구(릴리 프랭키 Lily Franky) 사무소에서 보조로 근근이 먹고사는 처지다. 마침 어머니의 집에 들렀다가 태풍을 만나면서 료타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되짚어 보게 된다. 이 작품에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자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료타는 도박으로 재..

너의 이름은(4K)

'날씨의 아이' '언어의 정원' '초속 5센티미터' 등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新海誠)의 작품들을 보면 사진 같은 섬세한 배경에 손그림의 정감이 섞여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수채화 같은 작품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들인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에서도 이런 특징들이 두드러진다. 다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으로 대표되는 지브리 작품들이 철저하게 손그림에 의존한다면 신카이 감독은 적절하게 컴퓨터 그래픽을 손그림과 섞어서 사용한다. 덕분에 실사처럼 세밀한 풍경 위에 손그림의 부드러운 채색이 더해져 정겨움과 함께 감정을 자극한다. 이런 특징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서는 보기 힘든 저패니메이션의 특징이기도 하다. 신카이 감독의 작품 '너의 이름은'(君の名は。2016년)도 마찬가지다. 도쿄의 신주..

아키라(4K)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애니메이션 '아키라'(Akira, 1988년)를 처음 본 것은 대학 때 복제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였다. 화질도 안 좋고 번역도 돼있지 않았던 터라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기말의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한 분위기와 충격적인 영상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랬기에 DVD가 등장한 이후 미국 아마존닷컴에서 영어자막으로 된 미국판 DVD 타이틀을 주저 없이 주문했고 다시 한글 자막이 들어간 국내판 DVD도 구입했다. 이번에 블루레이까지 국내에 정식 출시돼 반갑기 그지없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적인 그림 때문이다. 이 작품은 무조건 색을 많이 써서 부드럽고 둥글둥글하게 표현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아톰, 마징가제트처럼 다리가 길고 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블루레이)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19년)는 해외판 '아저씨' 같은 영화다. 살인청부업으로 먹고사는 전직 비밀공작원 인남(황정민)이 엄마를 잃고 장기밀매 조직에게 납치된 아이를 찾기 위해 태국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하필 인남이 의뢰를 받아 죽인 야쿠자 두목에게는 잔혹한 킬러 동생 레이(이정재)가 있다. 복수심에 불타는 레이는 태국까지 인남을 쫓는다. 인남은 태국의 장기밀매 조직과 레이 모두에게 추격을 당하면서 힘든 싸움을 벌인다. 뛰어난 싸움꾼이 납치된 아이를 찾기 위해 단신으로 장기밀매 조직과 싸우는 얘기는 '아저씨'와 닮았다. 다만 싸움의 스타일과 스케일이 다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인남은 '아저씨'의 원빈이 목욕탕에서 보여준 화려한 개인기 액션과 달리 총싸움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잔혹..

신문기자(블루레이)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의 '신문기자'(新聞記者, 2019년)는 중요한 두 가지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나는 2017년 아베 신조 전 총리를 곤혹스럽게 만든 가케학원 스캔들이다. 가케학원 스캔들은 가케학원 재단에서 일본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에 갖고 있는 오카야마 이과대학에 수의학과를 신설하는 문제를 놓고 내각부가 일본 문부과학부를 압박했다는 내용이다. 일본에서는 52년 동안 대학의 수의학과 신설이 없어서 이를 허용한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특혜 논란을 부를 만했다. 배경에 깔린 아베 전 총리의 가케학원 스캔들 여기에 아베 전 총리와 가케 코타로 가케학원 이사장이 40년 된 친구여서 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아베 전 총리는 수의학과 신설 추진 사실을 몰랐다고 부인했지만 2018년 1월 오카야마 이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