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랄프 파인즈 9

해리 포터와 불의 잔(4K 블루레이)

해리 포터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해리 포터와 불의 잔'(Harry Porter And The Goblet Of Fire, 2005년)은 꼭 롤플레잉 게임을 보는 것 같다. 여러 마법학교 학생들이 모여서 주어진 퀘스트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나 다양한 캐릭터들의 등장이 게임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원작 소설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부분들이 영화에서 통째로 사라졌다. 원작 소설에서 초반 중요한 사건의 무대인 퀴디치 월드컵을 비롯해 집요정이 등장하는 부분, 시리우스 블랙의 활약 등이 나오지 않는다. 그 바람에 마치 노예 해방 운동을 하듯 집요정 해방 운동을 벌이는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Emma Watson) 얘기도 통으로 빠졌다. 또 마법 경연 대회의 두 번째 잠수 과제를 해결하는 부분도 원작 소설과 다르게..

007 스카이폴 (4K 블루레이)

"취미가 뭔가?" "부활이지." 악당과 007이 영화 속에서 나누는 이 대사가 이번 작품의 테마다. 샘 멘데스 감독이 007 영화 탄생 50주년을 맞아 23번째 시리즈물로 내놓은 '007 스카이폴'(Skyfall, 2012년)은 악당이 파괴한 첩보조직과 제임스 본드의 부활을 다루고 있다. 부활은 소멸을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제임스 본드를 빼고는 모든 캐릭터가 새로 태어났다.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듯 007만 빼고 더 젊어지고 강건해 졌다. 오랜 세월 책상 앞에만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여성 머니페니는 총질을 마다 않는 검은 피부의 섹시한 젊은 여인으로 거듭났고, 데스몬드 르웰린이 타계할 때까지 연기한 늙은 과학자 Q는 컴퓨터를 귀신같이 다루는 젊은이가 됐다. 압권은 007이..

쉰들러리스트 (4K 블루레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 1993년)에 대한 평 중에 한 달 전 작고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짧은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매일 도둑의 손수레를 검사하는 경비원이 있다. 경비원은 도둑이 훔쳐가는 게 뭔지 알아낼 수가 없다. 도둑이 훔치는 건 손수레다. 유대인들은 쉰들러의 손수레다." 촌철살인, 그야말로 이 영화의 의미를 몇 개의 문장에 함축적으로 잘 담아냈다. 이 작품은 나치당원이면서 독일인 사업가였던 오스카 쉰들러가 수용소에 갇힌 수많은 유대인들을 살려낸 실화다. 쉰들러는 나치 군인들에게 뇌물을 써서 유대인들을 자신의 공장 직공으로 빼돌려 목숨을 구했다. 물론 그가 세운 냄비와 군수공장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비록 공장은 망했지만 그는 ..

헤일 시저(블루레이)

1950년대 할리우드는 위기였다. TV의 등장으로 많은 극장 관객들을 빼앗기면서 영화 산업의 존폐까지 거론됐다. 그래서 메이저 영화사들은 위기 타개책으로 TV의 작은 화면으로 볼 수 없는 요란한 볼거리에 승부를 걸었다. 배우, 촬영, 세트 등 엄청난 물량 공세로 만든 사극, 뮤지컬 등이 풍성한 볼거리를 앞세워 대형 스크린을 채웠다. 즉 블록버스터의 등장이다. 결과적으로 1950년대 할리우드의 위기는 역설적이게도 할리우드 영화의 중흥기로 이어졌다. 에단 코엔과 조엘 코엔 등 코엔 형제의 작품 '헤일 시저'(Hail, Caesar!, 2016년)는 할리우드의 중흥기를 다루고 있다. 1950년대 미국 영화산업의 뒷단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진실 같기도 하고 거짓 같기도 한 야사를 실화와 적당히 섞어서 미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블루레이)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비주얼을 위해 이야기가 존재하는 영화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영상들이 마치 양과자점에 벌려 놓은 예쁜 컵케이크처럼 반짝 반짝 빛난다. 그만큼 색깔이 예쁘다. 하지만 타셈 싱 감독의 '더 폴'처럼 장대하고 감동적인 비주얼은 아니고 아기자기한 소품 같은 비주얼이다. 여기에 잘 꾸며진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정돈된 미장센 또한 돋보인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도외시한 채 비주얼만 신경 쓴 것은 아니다. 여귀족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약간은 코믹한 추리소설처럼 펼쳐 놓았다. 즉, 적당한 가벼움을 가미해 비주얼을 살리면서 이야기를 끌어간 점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마치 엽기적인 작품을 잘 만드는 팀 버튼의 팬시 버전처럼 지나친 무거움과 어두움을 살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