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로버트 칼라일 3

T2 트레인스포팅2(블루레이)

"우선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배신이 일어난다." 영화 속 이 대사가 'T2 트레인스포팅2'(T2: Trainspotting 2, 2017년)라는 작품을 한마디로 설명한다. 대니 보일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은 20년 전 센세이션을 일으킨 전작의 악동들이 20년 뒤 다시 뭉친 이야기를 다뤘다. 내용은 배신 때문에 무위로 돌아가는 한탕을 다룬 펑크 소설, 펑크 뮤직 같은 이야기다. 세월은 흘러서 외모는 변하고 세상도 달라졌지만 작품 속 네 친구들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새롭게 살아보려고 마약을 끊고 갱생을 모색하지만 핏줄 속에 꿈틀거리는 본연의 일탈과 반항의 악동 기질이 여전하다. 이 작품의 묘미는 변화와 변하지 않는 것들의 조화다. 우선 변하지 않는 것은 인물들이다. 감독을 비롯해 배우들이 20년 전 전..

안젤라스 애쉬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중반, 토굴에 살던 아이들이 있었다. 머나먼 산골 이야기가 아니라 서울, 그것도 강동으로 분류되는 곳 얘기다. 믿기 힘든 얘기일 수 있지만 지금의 서울중앙병원 자리에 높다란 언덕이 있었고, 그 경사면에 굴을 파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어두침침한 입구를 구부리고 내려 가면 흙바닥에 무언가 깔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같은 반 친구를 따라 가봤던 그들의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충격이었다. 하도 강렬해 몇 십년이 지났는데도 그 모습이 또렷이 기억나고, 아직도 코 끝에선 진한 흙냄새가 나는 것 같다. 코흘리개 시절이라 집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당시로서는 왜 그렇게 사는 지 의아했다. 그러니 맨날 웃통을 벗고 거의 반벌거숭이에 맨발로 다니던 아이의 모습이 생경할 ..

007 언리미티드

007 시리즈 19번째 작품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 1999년)는 액션에만 치중했던 기존 시리즈와 달리 인물들의 개성이 살아있어 이야기를 쫓아가는 재미가 있다. 액션보다 드라마에 치중한 마이클 앱티드(Michael Apted)가 감독을 맡아 송유관과 핵잠수함을 장악해 테러를 일으키려는 테러리스트와 007(피어스 브로스넌 Pierce Brosnan)의 대결을 긴장감 있게 다뤘다. 주제가는 가비지가 불렀다. 눈에 띄는 것은 요란한 액션과 더불어 독특한 배경을 지닌 배역들. 스톡홀름 증후군을 지닌 악녀 본드걸로 1980년대 아이돌 스타였던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가 등장하며 007을 돕는 선한 본드걸은 '스타쉽 트루퍼스'로 알려진 데니스 리처드(Deni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