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를 진학하던 1983년에 교복 자율화가 됐다. 그전까지는 영화 '친구'처럼 검은 교복을 입고 머리를 밀고 다녔다.
그러다가 교복을 벗게되니 엄청난 충격이었다. 아이들은 제 세상을 만난 양 외모에 멋을 부렸고, 그 결과 '조다쉬' '나이키' '프로스펙스' '미즈노' 등 소위 학생들 사이에 알아주는 브랜드가 등장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일탈을 막기 위해 방과 후에는 당구장, 오락실, 극장 순례가 일과처럼 주어졌다.
그마저도 숨이 막힌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화장실에 숨어 담배를 피웠고 담을 타넘어가서 술을 마셨다. 그러지 못한 학생들은 백판을 사다가 당시 금지곡들을 들었다. 애지중지하며 가방 속에 넣고 다녔던 워크맨도 당시 패션 아이콘이었다.
조근식 감독의 '품행제로'(2002년)는 혼돈과 추억의 80년대를 담은 영화다. 당시 학생들이 즐겼던 롤러 스케이트장, 백판, 성인 비디오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시대를 살았던 감독의 꼼꼼한 디테일 덕분에 영화는 마치 앨범을 보는 것처럼 정겹고 유쾌하다. 고교 주먹을 연기한 류승범과 그의 친구 봉태규, 여학생 짱 공효진 등 젊은 배우들의 연기도 맛깔스럽다. 특히 재미있는 대사 덕에 절로 웃음이 난다.
묘사는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내용은 그 시대를 살았다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만큼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고교 친구들의 삶이 암울하게 갈린 영화 '친구'와 대척점을 이루는 작품.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의 화질은 평범하다. 윤곽선이 그다지 예리하지 못하고 색감도 약간 탁한 편이다. 그래도 특별한 잡티나 스크래치는 보이지 않는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적당하다. 액션 등 일부 장면은 음량이 다소 과장됐다.
<파워DVD로 순간 포착한 장면들>
1980년대 풍경을 그린 '품행제로'는 류승범을 위한 영화다. 자연스런 그의 연기가 제대로 빛을 발했다.
당시 유행가와 팝송이 흘러나오던 롤러 스케이트장. 마땅한 오락거리가 없던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제였다.
마치 숨어서 엿보는 듯한 카메라 앵글이 재미있다. 당시 불량배들은 쓰레기를 태우던 학교 소각장이나 뒷골목 등에서 아이들의 돈을 곧잘 갈취했다.
또다른 주먹 상만(김광일)이 유도부원들과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와이어 액션과 컴퓨터그래픽을 사용.
녹색 재킷으로 만든 백판의 추억이 새롭다. 당시 세운상가나 황학동 도깨비시장에 위치한 장안레코드 등은 학생들이 즐겨찾는 곳이었다. 정품 LP가 2,000~2,500원이었다면 백판은 700원 정도였으니 호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은 대부분 백판을 들었다. 아울러 정품 LP는 금지곡이 삭제된 반면 백판은 불법 제품답게 고스란히 금지곡이 수록돼 있어 일부러 백판을 찾기도 했다.
성인물인줄 알고 비싸게 주고 사온 비디오테이프에서 '전원일기'가 나오는 일화는 실제로 곧잘 일어났다. 세운상가에서 음란물을 팔던 양아치들이 더러 아이들을 저런 식으로 등쳐먹었다.
류승범의 상대역으로 나온 임은경.
야구공과 공에 맞아 밀려난 살 등은 모두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
류승범이 기타를 치며 김승진의 '스잔'을 부르는 장면은 배꼽잡을 만큼 재미있다. 당시 '스잔'은 박혜성의 '경아'와 함께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유행가였다.
황정민과 류승범, 두 배우의 이름만 보고 선택한 '사생결단'(2006년)은 두 배우의 연기 외에 남는게 없는 안타까운 작품이다. 내용은 마약판매상을 쫓는 형사와 형사의 끄나풀이 된 마약판매조직의 중간 판매상을 주축으로 마약판매조직의 세계를 다뤘다.
최호 감독은 2년여에 걸쳐 실제 마약 세계를 취재하고 이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꽤나 실감나게 마약판매조직의 실상을 그렸지만, 지나치게 리얼리티에 초점을 맞춰서 그런지 몰라도 이야기가 그다지 극적이지 못하다. 보는 이를 흥분시키며 영화에 빠져들게 만드는 액션 등 허구적 자극을 좀 더 곁들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반면 생 양아치 그대로 변신한 류승범과 지독한 형사로 분한 황정민의 연기는 참으로 치열했다. 추자현, 온주완 등 조연들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좋은 배우들의 연기가 답답한 이야기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영상은 평범한 화질이다. 윤곽선이 약간 두꺼워 예리한 맛이 떨어진다. 그러나 잡티, 스크래치 등 큰 흠은 없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대사 음량이 좀 작은게 흠.
<파워 DVD 캡처 샷>
마약판매상으로 분한 류승범과 그의 삼촌 역할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나온 김희라.
영화는 1997년 IMF 이후 기승을 부린 부산 마약판매상들을 다뤘다. 핸드헬드와 기울여 찍기, 줌이 많이 나오는 점이 특징.
'주먹이 운다'(2005년)는 한 단계 더 발전한 류승완 감독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인생막장의 불우한 두 인생이 권투에 희망을 걸고 맞부딪친다는 내용은 진부할 수도 있지만 류감독은 실화가 주는 진중함과 극적인 대결로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의 긴장감을 씨줄 날줄처럼 견고하게 엮어서 탄탄한 이야기로 만들었다.
여기에 최민식, 류승범 두 배우의 야수같은 연기가 빛을 발해 근래 우리 영화로는 보기드문 훌륭한 역작이 됐다. 다만 블리치 바이 패스와 개각도촬영 등 너무 많이 쓰인 영상기교는 지나치게 멋을 부렸다는 느낌이 든다. 어차피 영화는 광학기술의 산물인만큼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영상기교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요란한 포장지 때문에 정작 알맹이를 못보는 일이 생겨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영상은 화질과 음향 모두 훌륭하다. 중경과 원경은 우리 영화 특유의 고질적인 샤프니스 저하가 나타나지만 클로즈업 화면은 땀방울하나하나가 세세하게 보일 만큼 뛰어나다.
DTS를 지원하는 음향도 서라운드 효과가 탁월하다. 후방 스피커의 활용도가 높으며 인공적인 타격음을 강조하지 않아 효과음들이 자연스럽다.
<파워 DVD 캡처샷>
영화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최태식(최민식). 북경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인 그는 사업실패로 먹고 살기위해 길거리에서 돈을 받고 매맞는 일을 한다.
태식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주니어 라이트급 권투선수로 활동한 하레루야 아키라의 실화다. 아키라는 사업 실패로 도쿄 신주쿠에서 매맞는 일을 해 먹고 살았으며 현재는 이삿짐센터 직원이다. 그의 이야기는 2000년 MBC 화제집중에 방송되면서 국내에도 알려졌다.
또다른 한축을 맡은 상환(류승범).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도둑질, 깡패짓으로 먹고 산다.
상환의 이야기는 서철이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다. 1998년 폭행사건에 연루돼 천안교도소에 수감된 서철은 그곳에서 권투를 배워 2000년 전국체전 복싱부문 헤비급 은메달을 따내 화제가 됐다. 2003년 모범수로 가석방된 서철은 그해 10월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환했다. 서철의 이야기 역시 2001년 SBS 휴먼TV에 소개됐다.
경찰과 상환의 추적 장면에 쓰인 개각도 촬영. 개각도 촬영은 물방을 하나하나까지 강조되는 점이 특징.
이 작품은 실제 천안소년교도소에서 촬영해 화제가 됐다.
상환이 싸움을 벌인 상대방의 귀를 물어뜯어 씹어먹는 장면은 실제 천안소년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을 옮긴 것. 실제 일화에서는 귀가 아닌 어깨살을 물어뜯어 씹어먹었다고 한다.
필름 현상시 필름에 묻어있는 은입자를 씻어내지 않는 블리치 바이 패스는 콘트라스트를 강조하고 채도를 떨어뜨리는 특징이 있다. '친구'에서 처음 쓰인 이 기법은 거친 질감을 강조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반장 역을 맡은 구본웅은 원래 올레그 인 드라이브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이다. 실제 교도소에서는 반장이 아닌 '몸빵'이라는 용어를 쓰나 교도소측에서 은어를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을 받고 영화에서는 반장으로 표현.
류감독이 마음에 들어하는 장면. 현란한 조명 사이로 불빛을 받으며 올라오는 증기와 어둠속에 묻혀있는 두 인물의 모습이 묘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그림이다.
상환이 화장실에 숨어 빵과 우유를 허겁지겁 먹는 장면. 남자들이라면 군대 훈련소 시절이 생각나는 그림이다. 실제 천안소년교도소의 화장실 모습이다. 자해를 막기 위해 이처럼 뚫려있다.
최민식의 펀치드렁크 증세는 일종의 맥거핀이다. 관객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이를 의식하게 되지만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장치인 셈.
보면서 코 끝이 찡했던 장면. 사람들은 나문희를 보고 울었다지만 나는 류승범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거칠고 야수같은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정말 아파보였다.
막판 신인왕전 출전을 앞두고 훈련을 하는 상환.
막판 두 사람의 대결은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실제로 주먹을 주고받아 화제가 됐다.
막판 대결은 다양한 앵글이 특징. 이를 위해 류감독은 3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돌리며 촬영.
특히 마지막 6라운드가 볼 만 하다. 이 장면에는 뉴질랜드 민요인 '포카레카레나'가 흐른다. 이 노래는 우리들에게 '연가'로 잘 알려져있다.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의 목소리로 흐르는 '포카레카레나'는 전투에 나간 남편을 아내가 그리워하는 내용의 마오이족 노래다.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딧까지 모두 봐야 한다. 그래야 어어부밴드가 부르는 처절한 '행복의 나라로'를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은 하드 보일드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영화다. 하드 보일드라는 말도 더쉴 해미트 이후 오랜만에 들어본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본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고 많이 놀랐겠지만, 류승완 감독 말마따나 박찬욱의 본령은 바로 이 작품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올드보이'를 봐도 그렇고, 그는 잔혹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재주가 있다.
장기밀매단에게 사기를 당한 청년과 그에게 아이를 유괴당한 아버지, 아이 아버지에게 고문을 당하고 죽은 여자 패거리의 3가지 복수가 맞물린 이 작품은 공포영화처럼 참혹하고 잔인하다. 복수에 불타는 사람들이 피구덩이 속에서 차례로 죽어가는 모습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을 연상시킨다. 그러고보니 박찬욱과 쿠엔틴 타란티노는 느낌이 비슷하다.
DVD는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한다. 화질은 무난한 편. 색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볼 만 하다. 음향은 DTS와 돌비디지털을 지원. 후시의 느낌이 확연하다.
<파워 DVD 캡처샷>
이 작품 속의 복수는 더 할 수 없이 참혹하고 잔인하다.
슈퍼35밀리와 애너모픽 렌즈의 장점을 잘 살린 장면. 화면의 깊이감이 느껴진다.
카메오로 출연한 류승범. 뇌성마비 청년을 연기했는데 알아본 사람이 많지 않았다.
류승완의 형 류승범 감독도 중국집 배달부로 카메오 출연.
신하균과 배두나는 이 영화를 찍고나서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다.
이 장면은 CG로 합성한 것.
복수 뿐만 아니라 일상 속 풍경도 범상치 않다. 사람들에게 근친상간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을 받은 장면.
송강호를 둘러싼 3명의 남자가 삼각 구도를 이루며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하드 보일드가 어떤 장르인 지 충분히 설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