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류현경 5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정기훈 감독의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2015년)는 기자를 꿈꾸던 주인공 도라희(박보영)가 스포츠신문의 수습기자로 입사해 겪는 애환을 그린 코미디다. 이혜린 작가의 원작 소설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를 토대로 만든 영화인데 작심하고 만든 코미디여서 현실성은 떨어진다. 2005년 스포츠신문의 연예부 기자가 된 뒤 경제신문, 온라인 매체 등을 거친 작가가 기자 시절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는데, 영화는 이를 더 과장한 듯싶다. 우선 원작 소설의 주인공 이름인 이라희를 의도적으로 '또라이'를 연상케 하는 도라희로 바꿔 캐릭터를 희화화한 점부터 그렇다. 배경이 되는 영화 속 신문사 또한 저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황당하다. 주인공의 상관인 연예부 부장(정재영)은 시대에 뒤처진 행태를 고..

쓰리 썸머 나잇

김상진 감독의 '주유소 습격사건'을 아주 재미있게 봐서 그가 새로 만든 '쓰리 썸머 나잇'도 기대를 했다. 그런데 너무 실망스러웠다. 억지 설정과 1970년대식 슬랩스틱 코미디로 일관하는 이야기는 자연스런 웃음을 끌어내지 못한다. 내용은 세 친구가 느닷없이 부산으로 내려가 마약밀매조직과 얽히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뤘다. 무엇보다 우연의 반복이라는 짜맞추시긱 설정부터가 이야기의 전개를 억지스럽게 만든다. 세 청년과 마약밀매조직 두목 악당의 인연, 여기 끼어든 여인의 과거사 등이 매끄럽지 못하다. 세상에 그런 인연이 없으리란 법은 없겠지만 왜 하필 그런 인간들만 해운대 모래사장에 모여들었는 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억지 구성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그렇다 보니 곳곳에서 이야기의 얼개가 삐걱거리고 심지어..

영화 2015.07.18

결혼은 미친 짓이다 (블루레이)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년)는 계몽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아서 좋다. 올바른 사랑이나 인생의 참된 가치관에 대해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당시 세태를 솔직하게 보여줄 뿐이다. 이만교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결혼 따로, 연애 따로인 현대 남녀의 솔직한 사랑을 다뤘다. 제목은 역설적으로 결혼이 여러가지 조건을 따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더불어 진실된 사랑보다는 조건이나 형식에 얽매인 결혼제도의 맹점을 꼬집는다. 유하 감독의 이런 비판적 현실관은 나중에 '말죽거리잔혹사'를 통해 학교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위선적 폭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결혼 제도에 대해 지극히 냉소적인 판타지다. 여주인공이 두 집 살림을 하는 이유도 조건에..

굿바이 보이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지난 추억들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즐겁거나 괴로웠던 경험들을 하나씩 둘씩 떠나보내며 소년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 그 과정을 사람들은 성장통이라고 부른다. 노홍진 감독의 영화 '굿바이 보이'(2011년)는 그런 성장통을 다뤘다. 성장통을 다룬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개인의 기억에 시대의 흔적이 진하게 배어 있다. 시위 도중 달아나던 여대생이 막다른 골목에서 백골단이 휘두른 무자비한 곤봉에 피범벅이 돼서 끌려가던 모습과 민정당원으로 선거에 목을 매는 아버지의 모습 등 거창한 정치적 상황부터 아버지가 기타를 튕기며 부르는 이문세의 '소녀', 지금은 조간으로 바뀐 당시 어느 석간 신문의 보급소 풍경 등 소소한 일상까지 소년의 추억은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

영화 2011.06.16

방자전 (블루레이)

'음란서생' '방자전'으로 이어지는 김대우 감독 작품의 묘미는 기발한 비틀기에 있다. 점잖은 양반들을 음란 소설 작가로 둔갑시킨 '음란서생'에 이어 '방자전'(2010년)에서는 진정한 로맨스의 주인공을 하인인 방자로 바꿔 놓았다. 헛웃음 나올 법한 황당한 설정이지만 그럴 법 하다는 개연성을 부여한 것은 탄탄한 구성이다. 양반이나 하인이나 똑같은 사람인데 어찌 미인을 보고 느끼는 사랑이 다를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결국 이도령과 방자, 춘향과 향단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고도의 심리 로맨스가 돼버렸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은 김대우 감독의 비틀기다. 이도령은 유희 같은 사랑과 출세를 위해 여인을 이용하는 양반으로, 춘향 역시 팔자를 고쳐보기 위해 남자를 노리는 여인네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