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박찬욱 12

공동경비구역 JSA(블루레이)

1998년 2월, 김훈 중위 사건이 일어났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인 JSA의 벙커에서 경비소대장을 맡고 있던 육사 52기 김훈 중위가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뜻하지 않은 이유로 꽤 관심을 끌었다. 당시 출입처 중 하나였던 현대그룹의 시스템 통합(SI) 업체인 현대정보기술의 김척 사장이 김훈 중위의 아버지였다. 김 사장은 육사 21기로 제1군단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 중장 출신이었다. 당시 SI업체들은 워낙 관급 공사를 많이 맡았던지라 군 출신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다. 군에서는 김 중위가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으나 아버지가 타살을 주장하며 강력 반발해 지금까지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의문사로 남았다. 아버지가 타살을 주장한 이유는 TV 방송에도 많이 보도됐지만 몇 가지 의혹 때문이었다. 현..

올드보이(블루레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에 빛나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2003년 나온 영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음악, 연출, 연기, 영상 등 모든 것이 너무나도 훌륭했던 작품이다. 특히 설정이 기가 막혔다. 15년을 갇혀있다가 풀려난 오대수(최민식)의 복수극인 줄 알았으나 실상은 이우진(유지태)이 그린 더 큰 복수극이라는, 상자를 덮는 또 다른 상자 같은 설정부터 막판 충격적인 반전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내러티브를 갖춘 작품이다. 원작은 일본의 츠치야 가론이 그린 만화이지만 주인공이 오랜 시간 갇혀있다가 풀려난 것 외에 나머지는 새로운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르다. 박 감독은 이 작품에 신화적 요소를 많이 가미했다. 금기시된 관계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과 이로 인한 파국은 고대 비극적..

아가씨 (블루레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년)는 그의 작품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영화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등에서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을 선보였던 그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독특한 소재를 다뤘다. 박 감독은 자신의 작품중에서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소개했지만 그의 작품을 많이 보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충격적이고 변태적이며 가학적이다. 흔치 않은 외설적 취미를 가진 조선인과 이를 이용한 사기꾼 무리들의 변태적 행각, 이 과정에 드러나는 여배우들의 적나라한 동성애 장면, 서슴치 않고 손가락을 깍두기 썰 듯 잘라버리는 폭력 장면 등은 여전히 '올드보이'의 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경우에 따라 보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의 작품 중 진정 대..

아가씨

박찬욱 감독의 10번째 영화인 '아가씨'는 그의 이전 작품들과 다르면서 같은 영화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복수는 나의 것' 같은 복수 3부작에 비하면 잔혹하지 않으면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라는 점이 다르다. 여기에 기존 작품에서는 볼 수 없던 여인네들의 진한 사랑이 펼쳐진다. 영국의 새러 워터스가 쓴 소설 '핑거 스미스'를 각색한 이 작품은 엄청나게 잘 사는 친일파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 여인과 친일파의 처조카딸, 이를 둘러싼 남자들의 음모와 배신이 또아리를 틀고 돌아가는 얘기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지만 이야기가 결코 복잡하지 않아 흥미진진하게 따라갈 수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야기가 업치락 뒤치락하지만 양자 대결의 분명한 선악구도로 나뉘어 헷갈릴 일이 없다. 감독이 ..

영화 2016.06.11

스토커 (블루레이)

박찬욱 감독이 미국 폭스서치라이트 의뢰로 해외에서 처음 만든 '스토커'(Stoker, 2013년)는 관계에서 오는 긴장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숨겨진 미묘한 관계를 갖고 있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인은 시동생과 은밀한 접촉을 하며, 시동생은 조카 딸과 야릇한 감정을 나눈다. 이토록 복잡 미묘한 세 사람이 한 집에 살면서 빚어내는 긴장과 갈등이 영화의 큰 축을 이룬다. 박 감독은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물 흐르듯 은밀하게 움직이는 카메라와 깔끔한 편집으로 풀어냈다. 카메라는 '박쥐'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등 박 감독의 전작을 찍은 정정훈 촬영 감독이 잡았다. 그만큼 박 감독과 호흡이 잘 맞아 이번 작품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을 선보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