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백윤식 11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블루레이)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2015년)은 참으로 섬찟한 영화다. 절대 권력을 잡기 위해 기생하고 공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꽤나 그럴듯 하고 치밀하게 그렸다. 과연 저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지금까지 발생한 숱한 비리 사건들을 보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물론 각종 권력기관 내부에서 돌아가는 일이나 의사 결정 과정 등은 사실과 좀 거리가 있고 디테일도 떨어지지만 중요한 것은 권력을 향해 응집하는 추총자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인 만큼, 그런 점에서는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자본과 권력, 정치권이 얽히고 설키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만든 것은 원작 웹툰을 그린 윤태호 작가의 공이다. 거대한 그림을 잘 설계했다는 생각이다. 다만 미완으로 끝난 이 작품을 완결된 이야기 ..

그때 그사람들(블루레이)

그 날은 국민학교 6학년 가을 소풍 날이었다. 신나서 김밥을 싸들고 학교로 갔지만 소풍을 갈 수 없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한참을 지루하게 교실에 앉아있어야 했다. 나중에야 뒤늦게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충격이기는 했지만 '대통령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기에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이였다. 나라의 가장 큰 어른 대접을 받던 대통령이 죽었다는 소리에 여학생들은 울고 불고 난리였다. 대통령 사망 다음날인 1979년 10월27일은 그렇게 흘러갔다. 10.26을 떠올리면 포승에 묶인 김재규가 상 앞에 앉아 권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현장 재현을 하는 사진과 대통령 장례식날 주저앉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던 할머니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당시 박전희 전 대통령은 곧잘..

관상

예전에 한국 최고의 지관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기문둔갑의 정통 계승자로 꼽히는 그 노인은 유명한 전 대통령들부터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들의 묘터와 집터, 건물터 등을 두루 봐 준 분이다. 재미있는 점은 한 때 그 노인은 국내 대기업 신입사원 면접 때도 참가했단다. 지금은 고인이 된 창업주와 함께 연수원에서 신입사원들의 관상을 봤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인상이 중요하다고 본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에 면접에 대비해 성형수술까지 하는 세상이 됐다. 한재림 감독의 '관상'(2013년)은 이 같은 사람들의 심리에 부합하는 영화다. 내용은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는 계유정란에 휘말린 관상쟁이의 이야기다. 실제 역사에 가상의 이야기를 끼워넣은 전형적인 팩션이다. 그런데 설정은 그럴 듯 하지만 이..

영화 2013.09.18

돈의 맛 (블루레이)

임상수 감독이 전작 '하녀'에 이어 '돈의 맛'(2012년)에서도 가진 자들의 부도덕함에 메스를 들이댔다. 이번에 겨냥한 상대도 역시 최상위 1%에 해당하는 부유층이다. 전작에서 전도연이 그들의 부도덕함을 낱낱이 살펴보는 고발자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하인 격인 김강우가 맡았다. 영화는 요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돈에 얽힌 병폐들을 집약했다.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죗값을 치르지 않기 위해 벌이는 권력층을 향한 뇌물공세와 문란한 성생활 및 마약,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도덕 불감증까지 총동원됐다. 뿐만 아니라 부유층과 바람난 가정부로 필리핀 여자를 선정해 점점 늘어나는 동남아 노동자들의 문제도 다뤘다. 이 모든 것을 임 감독은 돈 때문에 벌어지는, 돈의 맛에 취한 부작용으로 봤다. 그런데 욕심이 과했다..

범죄의 재구성 (블루레이)

악인들의 세계를 즐겨 다루는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2004년)은 범죄 3부작의 시작이다. 사기꾼이 나오는 이 작품으로 출발해 도박꾼이 나오는 '타짜', 도둑이 나오는 '도둑들'로 이어진다. 이 작품들을 보면 일종의 패턴이 있다. 여러 명의 스타가 우루루 나와 저마다 가진 개성과 특기로 팀웍을 이뤄 한 탕 사건을 벌이는 것. '이탈리안 잡'이나 '오션스 일레븐' 같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이다. 여기에 마치 김수현 드라마를 보듯 캐릭터들은 어찌 그리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대사를 쉼없이 내뱉는 지 할리우드 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는 지극히 이국적이다. 그 색다름이 그의 영화가 주는 재미이자 생경함이다. 즉, 재미있으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낯설음이 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