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자벨 위페르 5

클레어의 카메라 (블루레이)

홍상수 감독의 '클레어의 카메라'(2016년)는 홍 감독이 2016년 칸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현지에서 촬영한 영화다.내용은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 마케팅 회사 대표와 직원, 영화감독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다뤘다. 여전히 홍 감독과 주로 영화를 찍는 김민희가 영화감독과 하룻밤을 보낸 직원 역할을 맡았고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장미희가 여직원을 질투하는 마케팅 회사 대표 역할을 맡았다.마케팅 회사 대표와 내연 관계이면서 여직원과 하룻밤을 보낸 영화감독 역할은 정진영이 연기했다. 줄거리는 홍 감독과 직접 연관이 없는 내용이지만 김민희와 스캔들이 불거진 뒤로는 왠지 작품들이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마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어딘가에 그와 김민희의 얘기가 투영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이 재미있으..

베일을 쓴 소녀(블루레이)

기욤 니클루 감독의 '베일을 쓴 소녀'(La religieuse, 2013년)를 보면 가장 먼저 영상이 정갈하다는 느낌이 든다. 투명한 수채화처럼 깨끗한 색감과 손에 잡힐 듯한 뽀얀 빛, 균형이 잘 잡힌 가운데 적절하게 공간을 채우는 인물과 소품들은 잘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여기에 폐쇄적이며 은밀하기까지 한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수녀들 만의 내밀한 이야기는 충분히 보는 사람의 호기심을 돋울 만 하다. 그래서 그랬을까, 드니 디드로가 쓴 원작 소설 '수녀'는 오랜 세월 금서였다. 물론 거기에는 수도원에서 금기시된 수녀들의 부도덕한 행동이 18세기 시대 정신에 어긋난다는 판단과 더불어 종교에 대한 반감, 나아가서는 신권에 대한 도전을 불러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깔려 있다. 그런데 비단 이런 문제..

피아니스트 SE

지난 3월31일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을 비판하는 희곡이 미국에서 낭독돼 외신에 보도되는 등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다. 그가 쓴 희곡 '왕도에서: 시민의 왕'은 지난 3월27일 미국 뉴욕의 마틴 E 시걸 극장에서 열린 대본 낭독회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됐다. 내용은 앞을 보지 못하는 돼지 인형 미스 피기가 트럼프의 이상한 행동을 애써 이해하려 드는 이야기다. 작가 옐리네크는 트럼프를 "트위터에 갇혀 과거와 미래를 파괴하는 인물"로 비판했다. 그의 희곡을 영어로 번역해 미국에 소개한 기타 호네거는 "트럼프의 당선은 나치의 등장에 비유할 만큼 충격적"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호네거는 옐리..

다른 나라에서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2011년)는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해서 화제가 된 작품이다. 그의 영화 중에 외국인이 주인공으로 나온 작품도 처음이거니와, 프랑스의 유명한 여배우가 주인공을 맡았으니 관심을 끌 수 밖에 없다. 평소 홍 감독 영화를 좋아한 위페르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흔쾌히 응했고, 저예산 영화라는 점을 알고 매니저나 코디네이터 일체 거느리지 않고 혼자 방한했단다. 영화는 보이지 않게 연결된 서로 다른 3편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배우와 장소만 동일할 뿐 그들이 빚어내는 상황과 이야기는 제각각이다. 다만 등대, 우산, 해변, 안전요원, 텐트, 펜션 등 어떤 요소들이 공통적으로 얼굴을 내밀며 마치 토막난 꿈처럼 각기 다른 단편이지만 연결성을 암시한다. 홍 감독의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 우..

8명의 여인들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작품은 ‘스위밍 풀’에서 알 수 있듯 색감이 화사하다. 2002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에 빛나는 ‘8명의 여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카트린느 드느브, 이자벨 위페르, 엠마뉴엘 베아르 등 8명의 여주인공이 제각기 다른 색깔의 의상으로 개성을 나타낸다. DVD는 오종이 표현한 화사한 색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 벽을 타고 흐르는 초록색 벽지, 점처럼 놓인 노란 의자 등 마치 팔레트를 펼친 듯 원색이 제대로 살아난 색감은 이 타이틀의 최대 장점이다. 이처럼 발색이 고운 영상은 눈 때문에 폐쇄된 어느 집에서 일어난 음침한 살인사건을 더 없이 경쾌한 분위기로 바꿔놓았다. 이 영화의 구성은 독특하다. 로버트 토마스의 희곡을 1950년대로 옮긴 이 작품은 아가사 크리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