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일본 55

태풍이 지나가고(블루레이)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영화는 잔잔한 일상을 통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태풍이 지나가고'(海よりもまだ深く, 2016년)도 그런 영화다. 유명 작가를 꿈꾸며 사립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는 료타(아베 히로시 阿部寛)가 태풍이 닥친 날 어머니(키키 키린 樹木希林)의 집에서 헤어진 아내(마키 요코 真木よう子), 아들과 함께 보내며 일어나는 일상을 다뤘다. 료타는 한때 촉망받는 작가였지만 도박으로 돈을 날리면서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탐정 일을 하는 친구(릴리 프랭키 Lily Franky) 사무소에서 보조로 근근이 먹고사는 처지다. 마침 어머니의 집에 들렀다가 태풍을 만나면서 료타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되짚어 보게 된다. 이 작품에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자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료타는 도박으로 재..

너의 이름은(4K)

'날씨의 아이' '언어의 정원' '초속 5센티미터' 등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新海誠)의 작품들을 보면 사진 같은 섬세한 배경에 손그림의 정감이 섞여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수채화 같은 작품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들인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에서도 이런 특징들이 두드러진다. 다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으로 대표되는 지브리 작품들이 철저하게 손그림에 의존한다면 신카이 감독은 적절하게 컴퓨터 그래픽을 손그림과 섞어서 사용한다. 덕분에 실사처럼 세밀한 풍경 위에 손그림의 부드러운 채색이 더해져 정겨움과 함께 감정을 자극한다. 이런 특징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서는 보기 힘든 저패니메이션의 특징이기도 하다. 신카이 감독의 작품 '너의 이름은'(君の名は。2016년)도 마찬가지다. 도쿄의 신주..

아키라(4K)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애니메이션 '아키라'(Akira, 1988년)를 처음 본 것은 대학 때 복제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였다. 화질도 안 좋고 번역도 돼있지 않았던 터라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기말의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한 분위기와 충격적인 영상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랬기에 DVD가 등장한 이후 미국 아마존닷컴에서 영어자막으로 된 미국판 DVD 타이틀을 주저 없이 주문했고 다시 한글 자막이 들어간 국내판 DVD도 구입했다. 이번에 블루레이까지 국내에 정식 출시돼 반갑기 그지없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적인 그림 때문이다. 이 작품은 무조건 색을 많이 써서 부드럽고 둥글둥글하게 표현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아톰, 마징가제트처럼 다리가 길고 머..

10년(블루레이)

일본을 오래 연구한 학자인 터프츠대학교의 수전 네이피어 교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다룬 '미야자키 월드'라는 책에서 일본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네 가지를 두려워한다고 썼다. 천둥, 불, 지진, 아버지다. 이 중에서 아버지는 전통적인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권위적인 남성 중심 문화를 말한다.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 요소다. 그만큼 일본 사람들은 잦은 지진과 여름이면 천둥 번개를 동반한 태풍에 시달리며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여기에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도시를 송두리째 태우는 폭격과 원자폭탄이라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영화 '10년'(十年, 2018년)은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네 가지 공포를 ..

신문기자(블루레이)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의 '신문기자'(新聞記者, 2019년)는 중요한 두 가지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나는 2017년 아베 신조 전 총리를 곤혹스럽게 만든 가케학원 스캔들이다. 가케학원 스캔들은 가케학원 재단에서 일본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에 갖고 있는 오카야마 이과대학에 수의학과를 신설하는 문제를 놓고 내각부가 일본 문부과학부를 압박했다는 내용이다. 일본에서는 52년 동안 대학의 수의학과 신설이 없어서 이를 허용한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특혜 논란을 부를 만했다. 배경에 깔린 아베 전 총리의 가케학원 스캔들 여기에 아베 전 총리와 가케 코타로 가케학원 이사장이 40년 된 친구여서 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아베 전 총리는 수의학과 신설 추진 사실을 몰랐다고 부인했지만 2018년 1월 오카야마 이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