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전도연 12

남과 여(블루레이)

오래된 영화팬들은 남과 여라면 클로드 를루슈 감독이 1966년에 만든 걸작 '남과 여'(A Man And A Woman)를 우선 떠올린다. 무려 60여 년 전 작품인데 지금 다시 봐도 아름다운 영상과 아련한 음악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명작이다. 이윤기 감독도 를루슈 감독의 작품을 의식하고 '남과 여'(2015년)를 만들지 않았을까.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을 다룬 점은 두 작품이 비슷하지만 기본적인 설정이 다르다. 클로드 를루슈와 이윤기의 '남과 여' 를루슈 감독의 작품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남녀이지만 홀아비와 미망인이어서 심리적 제약은 없다. 반면 이윤기 감독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지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각 유부남 유부녀여서 물리적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커다란 심리적 제약을 갖고 있다..

무뢰한 (블루레이)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2014년)은 하드보일드 멜로를 표방한 영화다. 도대체 하드보일드 멜로가 무엇일까. 이전 작품들에서도 사례를 들어보지 못한 이 장르에 대해 제작진은 "하드보일드 안에 들어 있는 멜로"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주먹질과 피가 난무하는 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멜로 이야기라는 뜻이다. 풀어보면 새로울 것도 없고 예전 작품들에서 숱하게 접한 이야기들인데 이를 굳이 새로운 장르인양 포장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만큼 이전 작품들과 차별화했다는 뜻일까. 영화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내용은 형사가 살인범을 쫓으면서 살인범의 애인과 뜻하지 않게 연정을 품게 되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가서 특별한 반전이 보이지 않는다.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에 등장인물들의 내밀한 감정 변화..

접속 (블루레이)

채팅, 유니텔, 삐삐. 장윤현 감독의 영화 '접속'(1997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이다. 이 영화가 나와서 인기를 끈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넘었다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이 작품은 당시 인기 있었던 PC통신을 매개로 싹튼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뤘다.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으로 만난 묻지마 사랑 같은 이야기인데, 당시로서는 PC통신과 채팅으로 만난 남녀가 사랑을 하는 이야기 자체를 아주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인터넷이 널리 퍼지기 전인 만큼 PC통신을 통한 사랑은 거의 사이버 러버 수준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이 영화가 서울의 종로 3가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을 했는데, 영화 속 두 사람이 만남을 시도하는 장소도 피카디리 극장이어서 신기했다. 영화의 소재였던 PC통신은 당시..

해피엔드 (블루레이)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1999년)가 개봉한 지 벌써 17년이 지났다. 앳된 소녀 같은 얼굴의 전도연과 젊은 청년의 모습이 역력한 최민식, CCTV도 보이지 않고 휴대폰 조차 흔치 않아 유선전화를 이용해 밀회를 나누는 장면 등에서 지나간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이 작품은 불륜이라는 만만찮은 주제를 다뤘다.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남편이 절망과 분노 끝에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통속극에서 다루는 흔한 소재이고 배반당한 사람의 복수라는 상투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만 결말을 알면서도 과정 자체가 궁금해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이야기를 농밀하게 풀어내고 장면들을 짜임새 있게 엮어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여기에 IMF 이후 실직한 가장들의 불안한..

김기영 감독의 원작 '하녀'(블루레이)

고 김기영 감독이 만든 '하녀'(1960년)는 50여년 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지금봐도 긴장감 넘치는 걸작 우리 영화다. 공장에서 여공들에게 합창을 지도하는 중년의 음악선생이 우발적으로 하녀와 육체적 관계를 가지면서 온 집 안에 죽음의 공포가 몰아치는 내용이다. 임상수 감독의 리메이크작 '하녀'와는 기본 설정이 같을 뿐 내용 전개방식이 많이 다르다. 2층 양옥집이라는 공간 안에서만 벌어지는 사건은 밀실 추리소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한 집 안에 공존하면 안되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목숨을 건 생존 싸움을 독특한 영상으로 절묘하게 묘사했다. 인물을 따라 앞뒤로 움직이며 공간의 깊이감을 부여하거나 수평으로 움직이며 긴장감을 부여하는 트랙킹 영상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뛰어나다. 특히 밥과 쥐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