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정지우 3

4등(블루레이)

한때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광고 문구가 유행한 적이 있다.그만큼 1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문구이지만 1등에 무섭도록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2등도 그럴진대, 하물며 4등은 말할 필요도 없다.특히 등수가 곧 미래요, 운명인 운동선수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정지우 감독의 영화 '4등'(2015년)은 제목 그대로 4등이 최고 등수인 어린 수영선수의 이야기다.초등학교 5학년생인 주인공 준호(유재상)는 열심히 수영 연습을 하지만 대회 성적이 늘 4등에 머문다. 수영에 소질이 있고 곧잘 하는데도 성적이 늘지 않자 엄마는 잘 가르치는 코치를 수소문해 아이를 맡긴다.한때 한국 기록을 수시로 갈아치울 만큼 주목받는 국가대표였던 수영코치 광수(박해준)는 국가대표 감독의 체..

해피엔드 (블루레이)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1999년)가 개봉한 지 벌써 17년이 지났다. 앳된 소녀 같은 얼굴의 전도연과 젊은 청년의 모습이 역력한 최민식, CCTV도 보이지 않고 휴대폰 조차 흔치 않아 유선전화를 이용해 밀회를 나누는 장면 등에서 지나간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이 작품은 불륜이라는 만만찮은 주제를 다뤘다.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남편이 절망과 분노 끝에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통속극에서 다루는 흔한 소재이고 배반당한 사람의 복수라는 상투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만 결말을 알면서도 과정 자체가 궁금해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이야기를 농밀하게 풀어내고 장면들을 짜임새 있게 엮어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여기에 IMF 이후 실직한 가장들의 불안한..

은교 (블루레이)

"너희 젊음이 너희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2012년)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대사다. 나이 지긋한 노시인이 여고생을 만나 벌어지는 일 때문에 설레임과 슬픔을 느끼는 내용이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 그래서 삶에서 얻고 잃어버리는게 무엇인 지, 다시 못올 청춘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그리고 아직도 가슴속 깊이 불씨처럼 타오르는 사랑을 간직한 노년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결코 쉽지 않은 미묘한 감정의 올을 한가닥 한가닥 정성들여 묘사한 정지우 감독의 연출력이 빛났다. 여기에 70대 노인 분장을 한 박해일, 스승과 예술적 갈등을 겪는 제자로 분한 김무일, 17세 여고생을 연기한 김고은 등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다. 여고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