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주디 덴치 8

007 스카이폴 (4K 블루레이)

"취미가 뭔가?" "부활이지." 악당과 007이 영화 속에서 나누는 이 대사가 이번 작품의 테마다. 샘 멘데스 감독이 007 영화 탄생 50주년을 맞아 23번째 시리즈물로 내놓은 '007 스카이폴'(Skyfall, 2012년)은 악당이 파괴한 첩보조직과 제임스 본드의 부활을 다루고 있다. 부활은 소멸을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제임스 본드를 빼고는 모든 캐릭터가 새로 태어났다.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듯 007만 빼고 더 젊어지고 강건해 졌다. 오랜 세월 책상 앞에만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여성 머니페니는 총질을 마다 않는 검은 피부의 섹시한 젊은 여인으로 거듭났고, 데스몬드 르웰린이 타계할 때까지 연기한 늙은 과학자 Q는 컴퓨터를 귀신같이 다루는 젊은이가 됐다. 압권은 007이..

전망 좋은 방(블루레이)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를 다룬 영화라면 '냉정과 열정사이' '인페르노'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제임스 아이버리 감독의 '전망좋은 방'(A Room With A View, 1985년)이다. EM 포스터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피렌체로 여행을 떠난 여인이 우연히 마주친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약혼자가 있는 여인의 사랑은 결코 쉽지 않다. 여인은 약혼자 때문에 애써 피렌체에서 만난 남성을 외면하지만 그렇다고 약혼자에게 빠져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고리타분하고 모범생같은 약혼자 보다는 피렌체에서 만난 자유분방한 남성에게 끌린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때로는 여인의 위험한 사랑을 경계하고, 때로는 진정한 사랑을 충고한다. 그만큼 주인공과 주변..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블루레이)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Miss Peregrine's Home For Peculiar Children, 2016년)은 팀 버튼 감독 특유의 잔혹동화 같은 영화다. 랜섬 릭스의 판타지 소설을 토대로 만든 이 작품은 신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이야기를 다뤘다. 손으로 불을 일으키고, 몸 안에서 벌떼를 내보내며 머리 뒤에 커다란 입으로 깨무는 등 특이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마치 '엑스맨'의 돌연변이를 보는 것 같다. 이들을 노리는 또다른 괴집단들은 아이들의 눈을 뽑아 먹으며 일본 애니메이션 '요괴인간'들처럼 사람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팀 버튼 감독은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범상치 않은 볼거리로 채웠다. 기괴한 괴물체, 이들과 벌이는 특이한 싸움과 아찔한 ..

나인 (블루레이)

6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은 뮤지컬 영화 '시카고'로 주목을 받은 롭 마샬 감독이 두 번째 들고 나온 뮤지컬 영화가 '나인'(Nine, 2009년)이다. 이 영화 역시 '시카고'처럼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로 옮겼는데 좀 독특하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유명한 이탈리아 영화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과 1/2'을 원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작 영화를 뮤지컬로 바꾼 것을 다시 영화로 옮긴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자신의 9번째 작품을 의미하는 제목처럼 창작의 고통을 겪었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펠리니 감독의 원작 영화와 궤를 같이 한다. 9번째 영화를 만들게 된 이탈리아 영화감독 귀도는 아이디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아 고통을 겪는 가운데 그동안 숱한 염문을 뿌린 여성들과 관계도 뒤죽..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블루레이)

은퇴한 일곱명의 영국 노인들이 새 삶을 찾아 인도에 도착한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본 화려하고 우아한 궁전식 호텔에서 남은 생을 보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들이 본 호텔 광고는 그야말로 한 편의 신기루였다. 여기저기 낡아서 보수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호텔은 심지어 문짝조차 없는 방도 있으며, 침대 위에 비둘기들이 잔뜩 앉아있는 먼지투성이 새장같은 곳이었다. 허풍 심한 인도 청년의 낚시질에 걸려도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그래도 노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개중에는 환불해달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존 매든 감독의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 2012년)은 보면 볼 수록 빠져드는 은근한 매력이 있는 영화다. 황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