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지브리 11

붉은 거북 (블루레이)

마이클 두독 드 비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붉은 거북'(La tortue rouge, 2016년)은 독특한 작품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처음으로 외부 제작사를 지원해 만들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마이클 두독 드 비트 감독은 1970년대부터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해 지금까지 오랜 세월 활동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대사가 없는 점이 특징이다. 그저 그림과 음악으로만 상황을 설명하고 일체 대사를 집어넣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애니메이터들은 대사가 없는 작품을 궁극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언어의 장벽 없이 보기 편하다. 애니메이션을 회화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대사가 없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 그렇다고 작품이 추상적인 것은 아니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저마다의 완결된 스토리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블루레이)

1980년대 학창 시절에 즐겨 보던 만화책이 있다. 성심도서라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출판사에서 낸 '신 루팡 3세'라는 시리즈 만화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해적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악한 인쇄의 이 만화는 일본 만화가 몽키 펀치가 그린 '루팡 3세'를 번역해 그대로 출간한 시리즈였다. 각 권마다 여러 개의 단편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만화책이 인기였던 것은 꽤 야하고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루팡 3세는 여자를 엄청 밝히는 호색한이어서 온갖 여자들과 가리지 않고 잠자리를 갖는다. 거기에 난폭하고 잔인한 액션, 말이 되지 않지만 황당하고 기발한 도주와 절도술,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유머까지 만화책이 줄 수 있는 온갖 재미를 선사했다. 다만 1960, 70년대 소설책처럼 세로쓰기여서 읽기 불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블루레이)

일본 저패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매년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찾는 산장을 신슈에 갖고 있다. 그는 그 곳에 친구 내외와 딸을 자주 초대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당시 10세 남짓한 친구의 딸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또래 소녀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구상했다. 그렇게 만든 작품이 바로 장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단순히 영감을 받은 것 뿐만 아니라 주인공 치히로의 모습도 친구 딸과 똑같이 그렸다. 나중에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본 친구 부부는 딸이 나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영화 개봉 뒤 많은 사람들은 작품 해석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미하엘 하네케 감독 말마따나 그것은 보는 사람들의 시각일 뿐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평론가..

고양이의 보은(블루레이)

저패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猫の恩返し, 2002년)은 새로운 지브리 스튜디오 시대의 출발을 알린 작품이다. 그전까지 지브리 스튜디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번갈아 가며 작품을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그렇다보니 두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나이가 든 두 사람의 뒤를 이을 후계자 양성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러던 차에 1999년 일본의 한 테마파크에서 고양이를 소재로 한 20분 분량의 작품을 의뢰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전에 만든 작품 '귀를 기울이면'에 등장하는 고양이 바론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구상했다. 이를 토대로 '귀를 기울이면'의 원작 만화를 그린 히이라기 아오이에게 스토리 구성을 의뢰했다. 아오이가 그린 만화는 나중에 '바론 고양이 남작'이라는 만화책..

바람이 분다 (블루레이)

1941년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 일본이 자랑할 만한 전력은 해군이었다. 아카기, 히류, 즈이가쿠, 카가 등 6척의 항공모함과 여기 탑재된 제로센 전투기는 태평양 전쟁의 서막인 진주만 기습의 주역이었고 세계 해전의 향배를 거함 거포주의에서 항공결전 시대로 바꿔 놓는데 일조했다. 당시 일본군들이 레이센, 즉 영전(零戰)이라고 부른 제로센 함상전투기는 가벼운 기체 덕분에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시속 533km의 속도를 자랑했다. 그만큼 빠르고 기동성이 좋아서 개전 초기 공중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로센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4척의 항모와 함께 경험많고 우수한 조종사들이 대거 수장되며 더 이상 개전 초기의 우위를 이어가지 못했지만 당대 세계 최정상급 전투기였다. 이를 만든 사람이 미쓰비시 중공업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