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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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미라이(블루레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未来のミライ, 2018년)는 첫 장면에서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감 샷으로 펼쳐지는 도시의 풍경이 마치 항공사진을 보는 것처럼 정교하고 세밀하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 수채화처럼 아련한 느낌을 주는 색감의 그림들이 편안하게 펼쳐진다. 이 속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사실적으로 그린 배경과 달리 둥글둥글하고 간략하게 선처리를 한 전형적인 만화풍 그림체다. 이 점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 등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사실적인 풍경 속에서 움직이는 만화 같은 캐릭터들이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내용은 4세 소년이 갓난아기인 여동생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다뤘다. 부모의 관심이 온통 아기에 집중되면서 철부지..

돌이킬 수 없는(블루레이)

가스파 노에 감독의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2002년)은 쉽게 보기 힘든 충격적인 영화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우선 내용이 아주 폭력적이고 거칠다. 지하보도에서 무차별 강간당한 뒤 폭행까지 당한 여자 친구(모니카 벨루치)의 복수를 위해 범인을 찾아 나선 남자(뱅상 카셀)의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강렬한 장면들이 마구 나온다. 붉은색 지하보도에서 벌어지는 9분가량의 강간과 폭력 장면은 여인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해서 절로 몸서리 쳐진다. 여인의 복수를 위해 남자가 찾아간 곳은 하필 남성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게이 술집이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폭력 장면 또한 처참하다. 남자는 팔이 꺾이고, 엉뚱하게 나선 다른 남성은 소화기로 맞아 ..

클레어의 카메라 (블루레이)

홍상수 감독의 '클레어의 카메라'(2016년)는 홍 감독이 2016년 칸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현지에서 촬영한 영화다.내용은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 마케팅 회사 대표와 직원, 영화감독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다뤘다. 여전히 홍 감독과 주로 영화를 찍는 김민희가 영화감독과 하룻밤을 보낸 직원 역할을 맡았고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장미희가 여직원을 질투하는 마케팅 회사 대표 역할을 맡았다.마케팅 회사 대표와 내연 관계이면서 여직원과 하룻밤을 보낸 영화감독 역할은 정진영이 연기했다. 줄거리는 홍 감독과 직접 연관이 없는 내용이지만 김민희와 스캔들이 불거진 뒤로는 왠지 작품들이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마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어딘가에 그와 김민희의 얘기가 투영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이 재미있으..

그 후(블루레이)

홍상수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그 후'(2017년)는 마치 감독과 김민희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내용은 출판사 사장과 여직원의 불륜 관계를 다뤘다. 아내와 딸이 있는 출판사 사장 봉완(권해효)은 여직원 창숙(김새벽)과 사랑에 빠진다.두 사람은 봉완의 아내 몰래 밀회를 즐기지만 창숙이 관계에 부담을 느껴 출판사를 그만두면서 끝난다. 그의 빈자리를 새로 뽑은 여직원 아름(김민희)이 메운다.하지만 아름은 출근 첫날 사장의 아내와 맞닥뜨리며 봉변을 당한다. 아름을 사장의 내연녀로 오해한 사장의 아내는 아름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폭력을 행사한 것.봉완은 아내를 만나 오해라고 항변했지만 아내는 믿지 않는다. 그런데 출판사를 떠났던 창숙이 봉완을 잊지 못해 돌아오면서 관계가 꼬이기 시작한다.홍 감독은 한마디로 ..

무뢰한 (블루레이)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2014년)은 하드보일드 멜로를 표방한 영화다. 도대체 하드보일드 멜로가 무엇일까. 이전 작품들에서도 사례를 들어보지 못한 이 장르에 대해 제작진은 "하드보일드 안에 들어 있는 멜로"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주먹질과 피가 난무하는 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멜로 이야기라는 뜻이다. 풀어보면 새로울 것도 없고 예전 작품들에서 숱하게 접한 이야기들인데 이를 굳이 새로운 장르인양 포장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만큼 이전 작품들과 차별화했다는 뜻일까. 영화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내용은 형사가 살인범을 쫓으면서 살인범의 애인과 뜻하지 않게 연정을 품게 되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가서 특별한 반전이 보이지 않는다.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에 등장인물들의 내밀한 감정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