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키이라 나이틀리 12

이미테이션 게임(블루레이)

인류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한 앨런 튜링은 비운의 천재였다. 그는 사실상 세계 최초의 컴퓨터를 만들었고 인공 지능을 연구했으며 인지 과학을 시작했다. 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를 당했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려졌다'라고 쓴 이유는 경찰 발표 등을 보면 청산가리를 이용한 자살이 유력하지만 독살당했다는 음모론 또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죽음 이후에도 그는 수십 년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의 업적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가를 만큼 커다란 기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워낙 중요한 국가 기밀이어서 노출할 수 없었다. ◇튜링의 삶을 다룬 정교한 드라마 모튼 틸덤 감독의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 2014년)은 바로 이러한 ..

피터팬 전설의 시작(블루레이)

닉 윌링 감독의 '피터팬 전설의 시작'(Neverland, 2011년)은 기존 피터팬 영화들과 많이 다르다. 주인공 피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신비한 섬에 사는 주인공이 아니라 런던 빈민가에서 소매치기 일당으로 살아가는 좀도둑으로 등장한다. 그의 보호자는 소매치기단을 이끌고 있는 다름 아닌 후크다. 바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갈고리 손으로 등장하는 후크 선장이다. 하지만 악어에게 손을 물리지도 않았고 당연히 두 손 모두 멀쩡할 뿐더러 검술의 달인이어서 피터에게 칼 쓰는 법을 가르친다. 피터 일당은 우연히 보석상을 털다가 신비로운 구슬을 손에 넣는데, 구슬 덕분에 신비의 땅 네버랜드로 가게 된다. 이후 구슬을 손에 넣으려는 후크 일당과 피터팬의 싸움이 시작된다. 내용 비틀기를 통해 익히 알려진 기존 작품..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블루레이)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Pirates of the Caribbean: Dead Men Tell No Tales, 2017년)는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해적 영화의 낭만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전통적으로 해적 영화들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보물섬'의 DNA를 갖고 있다. 해적들이 어딘가 숨겨 놓은 보물을 찾기 위해 사악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이라는 기본 구조다. 즉, 로또처럼 사람들의 물욕을 자극하는 일확천금의 꿈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여기에 아름다운 여인과 아크로바틱, 슬랩스틱이 가미된 액션과 웃음으로 사람들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그래서 해적 영화는 별다른 줄거리 없이도 언제나 유쾌하고 흥겹다. 그만큼 본능에..

비긴 어게인 (블루레이)

'비긴 어게인'(Begin Again, 2013년)은 두 남녀의 애잔한 사랑 이야기를 음악에 실은 감동적인 영화 '원스'를 만든 존 카니 감독의 작품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음악을 매개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내용은 뉴욕의 한 복판에서 만난 퇴락한 음반 프로듀서와 무명의 가수가 의기투합해 음반을 만드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사랑의 아픔과 소중한 인연의 만남 등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펼쳐진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 일상의 평범함이 의미를 갖게 된다"는 대사가 가슴에 와닿는다. '원스' 만큼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이나 진중한 느낌은 덜하지만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든 캐릭터와 음악이 '원스'와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한때 밴드 활동을 했던 존 카니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잘 녹..

에베레스트 (블루레이)

산악영화의 기본적인 도식은 험한 자연환경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클리프행어'나 '얼라이드' 같은 작위적 드라마나 '노스페이스'나 '히말라야' 같은 실화를 다룬 산악영화들은 행, 불행으로 갈리는 결말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기본적인 도식은 같다. 달라지는 것은 장소와 등장인물들이 험난한 자연환경 속에서 얼마나 극적인 사투를 벌이느냐에 달렸다. 그런 점에서 산악영화는 재난영화나 마찬가지다. 극적인 자연 환경이 악역을 맡아 이야기의 절반을 채우고 나머지를 배우들의 드라마가 끌어 간다. 결국 볼거리와 캐릭터로 승부하는 셈이다. 발타자르 코루마쿠르 감독의 '에베레스트'(Everest, 2015년)는 그런 점에서 성공한 산악 영화다. 8,848m의 세계 최고봉인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봉우리와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