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톰 윌킨슨 4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블루레이)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비주얼을 위해 이야기가 존재하는 영화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영상들이 마치 양과자점에 벌려 놓은 예쁜 컵케이크처럼 반짝 반짝 빛난다. 그만큼 색깔이 예쁘다. 하지만 타셈 싱 감독의 '더 폴'처럼 장대하고 감동적인 비주얼은 아니고 아기자기한 소품 같은 비주얼이다. 여기에 잘 꾸며진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정돈된 미장센 또한 돋보인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도외시한 채 비주얼만 신경 쓴 것은 아니다. 여귀족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약간은 코믹한 추리소설처럼 펼쳐 놓았다. 즉, 적당한 가벼움을 가미해 비주얼을 살리면서 이야기를 끌어간 점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마치 엽기적인 작품을 잘 만드는 팀 버튼의 팬시 버전처럼 지나친 무거움과 어두움을 살짝..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블루레이)

은퇴한 일곱명의 영국 노인들이 새 삶을 찾아 인도에 도착한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본 화려하고 우아한 궁전식 호텔에서 남은 생을 보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들이 본 호텔 광고는 그야말로 한 편의 신기루였다. 여기저기 낡아서 보수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호텔은 심지어 문짝조차 없는 방도 있으며, 침대 위에 비둘기들이 잔뜩 앉아있는 먼지투성이 새장같은 곳이었다. 허풍 심한 인도 청년의 낚시질에 걸려도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그래도 노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개중에는 환불해달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존 매든 감독의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 2012년)은 보면 볼 수록 빠져드는 은근한 매력이 있는 영화다. 황혼기..

더블 스파이

토니 길로이 감독의 '더블 스파이'(Duplicity, 2009년)는 독특한 스파이물이다. 총격전을 벌이는 정치 스파이가 아닌 기업의 비밀을 훔치는 산업 스파이 이야기다. 줄리아 로버츠와 클라이브 오웬이 기업의 비밀을 훔치는 산업 스파이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기업의 비밀 뿐 아니라 상대의 마음까지 훔친 두 사람은 '나를 사랑한 스파이'처럼 졸지에 사랑에 빠진 연인이 된다. 서로를 속고 속이는 스파이들의 특성상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상대 뿐 아니라 관객까지 교묘하게 속인다. 하지만 막판 반전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2시간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시간을 역순으로 엮은 이야기가 스파이물 특유의 긴장감을 반감시켰기 때문. 결정적으로, 스파이로서 줄리아 로버츠의 매력이 떨어진다. 그런 점에..

작전명 발키리 (블루레이)

폰 슈타우펜베르그 대령이 1944년 7월20일에 시도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은 독일군 내에서 일어난 레지스탕스 운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히틀러는 롬멜 장군 등 음모에 가담한 장군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독일군은 보복이 두려워 히틀러 앞에서 바른 소리를 하지 못했다. 결국 그런 분위기가 독일의 패망에 일조를 한 셈이다. 무의미한 역사적 가정이지만, 만약 슈타우펜베르그의 암살 시도가 성공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전후 독일은 분단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전쟁이 더 빨리 끝났을 수도 있다. '유주얼 서스펙트' '엑스맨'을 만든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역사적인 7.20 사건을 '작전명 발키리'(Valkyrie, 2008년)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비교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