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하명중 4

최후의 증인(블루레이)

국내 추리소설계의 대부로 통하는 작가 김성종은 교도소에서 최고 인기 작가다. 문학성이 뛰어나거나 추리기법이 기발해서가 아니라 아주 선정적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통속작가에 가까운 그가 쓴 장편소설 '일곱개의 장미송이' '나는 살고 싶다' '백색인간' 등을 보면 성적인 묘사가 아주 세세하고 폭력적이다. '여명의 눈동자'도 마찬가지인데, 드라마가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송지나가 각색을 잘 한 덕이다. 그나마 문학적으로 인정을 받는 작품이 바로 '최후의 증인'이다.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이 작품은 한국전쟁에 얽힌 사람들의 비극과 복수를 다뤘다. 이를 33년 전에 영화로 만든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1980년)은 저주받은 걸작이다. 이 감독 특유의 박력있는 연출과 ..

바보들의 행진(블루레이)

1970년대, 80년대 금지곡 중에는 영화음악이 많았다. 영화 '별들의 고향'에 나왔던 윤시내의 '나는 열아홉살이에요', 이장희의 '한 잔의 추억', 송창식의 '왜 불러' '고래사냥' 등이 대표적이다. 워낙 암울했던 시기여서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가사에도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최고봉은 단연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나온 송창식의 노래들이다. 지금은 CD로 OST까지 나왔지만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가 폐지된 1996년까지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왜 불러' 등은 방송에서 들을 수 없고, 음반판매도 할 수 없는 금지곡이었다. 그래서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년)을 떠올리면 영상보다 노래가 먼저 생각난다. 영화도 거칠것 없는 가사의 노래만큼이나 파격적이다. 미..

병태와 영자

하길종 감독의 '병태와 영자'(1979년)는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청춘들의 송가다. 이제는 나이 지긋한 중년들이 됐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 참 순진하고 풋풋한 청춘들이 떠오른다. 하 감독이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바보들의 행진'의 속편 격인 이 작품은 주인공 병태가 군대 다녀와 영자와 사랑을 싹 틔우는 내용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여대생들에게 갓 복학한 남자친구는 참 암울한 존재였다. 마땅한 직업 없이 학교를 다녀야 하니 보장할 만한 미래라는 것이 없다. 그 사이 여자는 대학을 졸업해 취직을 하고, 사회에서 능력있는 남자들을 만나면 흔들리게 된다. 영화는 이런 시대상을 담아 오랜 세월 테마로 남아 있는 이수일과 심순애식 사랑을 그렸다. 그래도 하길종과 각본을 쓴 최인호는 사랑의 힘을..

고교 얄개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소위 학원소설이라고 불리던 명랑 소설을 꽤나 열심히 읽었다. 당시 아리랑사에서 나온 조흔파, 오영민 등의 소설은 너무 웃어서 눈물을 쏙 빼놓을 만큼 재미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얄개전' '악도리 쌍쌍' '에너지 선생' '고명아들' 등 조흔파의 소설은 압권이었다. 이 책들이 지금 다시 그대로 나오면 좋으련만, 최근 나온 '에너지 선생'은 일부 내용을 빼먹은 채 출간돼 아쉬움이 크다. 석래명 감독이 1976년에 만든 '고교 얄개'는 타계한 작가 조흔파가 1954년에 내놓은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얄개는 장난꾸러기라는 뜻의 사투리. 제목이 말해주듯 장난만 치는 고교생이 개과천선해 친구를 돕는 내용이다. 원작은 나름대로 적절한 유머와 페이소스가 있는데, 영화는 시간 관계상 원작을 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