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하비 케이틀 5

펄프픽션(4K)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영화 '펄프픽션'(Pulp Fiction, 1994년)은 처음 봤을 때 참으로 놀라운 영화였다. 여러 개의 다양한 이야기가 옴니버스처럼 한 영화 안에서 펼쳐지지만 결국 유기적으로 맞물려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마치 여러 개의 물줄기가 거대한 강에서 만나는 것처럼 어수선한 이야기들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져 도도한 이야기의 흐름을 빚어낸다. 오랫동안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타란티노 감독의 재기가 빛나는 탁월한 수작이다. 영화는 갱단 두목 월레스(빙 라메스 Ving Rhames)와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면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네 일상이 여러 사람과 얽힌 것처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삶도 그러하다. 그래서 부하들이 잃어버린 돈가방을 찾아오는 ..

피아노 (블루레이)

제인 캠피온 감독은 작품들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홀로서기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견지해 왔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 바로 '피아노'(The Piano, 1993년)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에이다(홀로 헌터)는 아주 척박한 환경에 놓인 외로운 여성이다. 그의 현실을 대변해 주듯 사방이 온통 진흙밭 투성이인 뉴질랜드에서 그는 오로지 딸과 피아노에 의지해 살아간다. 하나 뿐인 남편(샘 닐)은 온통 땅을 사서 넓히는데만 관심이 있고, 에이다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에이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오로지 딸과 수화로만 대화하는 에이다에게 유일하게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는 피아노 뿐이다. 그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연주하는 피아노는 에이다의 말이자 감정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블루레이)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비주얼을 위해 이야기가 존재하는 영화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영상들이 마치 양과자점에 벌려 놓은 예쁜 컵케이크처럼 반짝 반짝 빛난다. 그만큼 색깔이 예쁘다. 하지만 타셈 싱 감독의 '더 폴'처럼 장대하고 감동적인 비주얼은 아니고 아기자기한 소품 같은 비주얼이다. 여기에 잘 꾸며진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정돈된 미장센 또한 돋보인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도외시한 채 비주얼만 신경 쓴 것은 아니다. 여귀족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약간은 코믹한 추리소설처럼 펼쳐 놓았다. 즉, 적당한 가벼움을 가미해 비주얼을 살리면서 이야기를 끌어간 점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마치 엽기적인 작품을 잘 만드는 팀 버튼의 팬시 버전처럼 지나친 무거움과 어두움을 살짝..

저수지의 개들 (블루레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 1992년)은 타고난 이야기꾼의 숨겨진 재능을 유감없이 드러낸 걸작이다. 엄청난 비디오광이었던 28세의 청년은 자신이 보고 듣고 알고 있던 감각적 소재들을 남김없이 쏟아 부었다. 음악부터 영상, 수다스럽게 쏟아내는 대사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배우들까지 모든게 완벽한 앙상블을 이뤄낸다. 그만큼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땐 마치 앤디 워홀의 팝 아트 그림처럼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이야기는 한무리의 범죄자들이 모여서 보석상을 털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다뤘다. 서로 죽고 죽이는 그들의 파행은 쓰레기장에 모여 쓰레기를 뒤지며 물고 뜯는 개떼를 연상케 한다. 이를 위해 타란티노는 이 작품에서 걸죽한 욕설과 음담패설부터 잔혹한 폭력까지 남..

비열한 거리 SE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그의 삶에서 영화적 소재를 즐겨 찾는다. 그의 뿌리인 미국계 이탈리아인들의 삶은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갱스 오브 뉴욕' 등으로 작품화했고 그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음악과 종교는 '더 블루스' '라스트 왈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등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삶에서 적극적으로 영화적 소재를 찾는 창작활동의 시초가 된 작품이 바로 '비열한 거리'(Mean Streets, 1973년)다. 그의 청춘의 한때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뉴욕,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인들이 모여 사는 리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주류 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이탈리아 청년들의 불안한 삶과 방황을 다루고 있다. 특히 하비 케이틀이 연기한 찰리 카파는 스콜세지 감독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극 중 못된 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