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홍콩느와르 6

지존무상 (블루레이)

1980년대 말 큰 인기를 끈 홍콩 누아르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영웅본색' '첩혈쌍웅'류의 액션물, 또 하나는 '지존무상' '정전자'로 대표되는 도박물이다. 물론 도박물 또한 총싸움과 주먹다짐이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도박이 메인 스토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기에 남자들 간의 의리, 사랑과 우정을 위한 처절한 복수 등은 액션물과 도박물을 가리지 않고 기본으로 가져가는 홍콩 누아르의 공통점이다. 홍콩 누아르 중 도박물의 효시가 된 작품이 바로 1989년 국내 개봉한 왕정, 향화승 감독의 '지존무상'(至尊無上)이다. 아시아 최고를 자부하는 두 명의 도박사가 일본 갱단과 일생일대의 도박 게임을 벌이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묘미는 도박을 이용한 반전 스토리와 유덕화의 매력이다. 다른 도박류와 달리..

천장지구 (블루레이)

진목승 감독의 '천장지구'(天若有情: A Moment Of Romance, 1990년)는 대학 시절 극장에서 봤던 영화다. 개봉 극장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인터넷을 찾아보니 중앙극장) 유덕화라는 이름과 흠뻑 빠져서 봤던 '열혈남아'를 연상케 하는 유덕화 사진이 들어간 포스터에 반해 극장을 찾았다. 하지만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액션이 아닌 애닲은 사랑이야기에 치중한 내용이 너무 신파적이었다. '열혈남아'에서 봤던 유덕화의 액션이나 느와르적인 느낌이 강하지 않았다. 당시 유덕화하면 '열혈남아' 아니면 '지존무상'에서 보여준 강렬한 액션과 의리남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천장지구'의 유덕화는 그렇지 못했다. 물론 그가 극중에서 맡은 배역은 밑바닥에서 험하게 굴러먹는 막장 인생으로, 깡패들 싸움에 휘말려 피를 보..

영웅본색2 (블루레이)

서극과 오우삼은 '영웅본색'의 성공에 힘입어 속편을 만든다. 전편처럼 서극이 제작하고 오우삼이 감독을 맡은 '영웅본색2'(1987년)는 황당하고 빈약한 줄거리를 피가 철철 흘러 넘치는 폭력으로 메운다. 제작진은 전편에서 크게 인기를 끈 주윤발의 부재를 아쉬워해 전편 말미에 죽은 주윤발을 쌍둥이 동생이라는 황당한 설정으로 부활시킨다. 되살아난 주윤발을 중심으로 전편의 주인공 적룡과 장국영이 다시 뭉쳐 과거의 동지를 배신한 적의 소굴로 쳐들어 간다. 세 명의 안티 히어로들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적들을 향해 무수한 총알 세례를 퍼붓는 것도 부족해 수류탄까지 집어 던지며 전쟁을 치르다시피 한다. 그만큼 전작에 비해 폭력의 스케일이 커졌고 홍콩 뿐 아니라 미국 뉴욕까지 오가며 무대를 넓혔다. 피 칠갑이 된 ..

첩혈쌍웅(블루레이)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The Killer, 1989년)은 소위 오우삼 스타일의 집대성이자 최종 완성본이다. 이 작품에는 흰 비둘기, 쌍권총, 휘날리는 긴 코트자락, 슬로모션으로 재현되는 느린 액션, 성당 등 그의 상징처럼 쓰이는 각종 아이콘들이 모두 등장한다. 이런 아이콘들이 현란한 총격전과 어우러져 나름대로 스타일리시한 액션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홍콩 느와르는 정점에 선 이 작품 이후 쇠퇴기로 접어든다. 남자들의 우정과 복수라는 천편일률적인 주제에 기대다보니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액션 밖에 없는데, '첩혈쌍웅'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액션을 다 드러냈기 때문.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홍콩 느와르의 영광과 쇠락을 함께하는 아이러니컬한 작품이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1980년대에 대한..

열혈남아 (블루레이)

어떤 판본을 먼저 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 대학 시절에 처음 본 왕가위 감독의 걸작 '열혈남아'(1987년, http://wolfpack.tistory.com/entry/열혈남아-골든-콜렉션)는 왕걸과 엽환의 노래 '汝是我胸口永遠的通'(너를 보낸 내 가슴은 아프고)로 기억한다. 유덕화가 장만옥의 팔을 낚아 채 공중전화 박스로 뛰어든 뒤, 하얗게 부서지는 형광등 불빛 아래서 열렬하게 키스를 나눌 때 흘러 나오던 이 노래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왕걸의 CD를 듣다가 이 노래가 흘러 나오면 가슴이 뛰며 아련함이 밀려 온다. 그만큼 왕걸과 엽환의 노래는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의 장면들과 기막히게 어울렸다. 따라서 두 사람의 노래가 없는 '열혈남아'는 상상할 수도 없고, 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