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8월의 크리스마스 2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는 동양인으로서는 드물게 서양적 감성을 지닌 작가다. 일본 전통의 가부키나 하이쿠, 다도와는 거리가 멀고 재즈와 칵테일, 팝 음악이 더 어울린다.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은 일본 전후(태평양전쟁) 세대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를 피부처럼 체화시켰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마치 미국판 페이퍼북 같은 느낌이 든다. '코끼리공장의 해피엔드'는 하루키의 그런 경향이 다분한 수필집이다. 이 책은 그가 1980년대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코끼리공장의 해피엔드'와 '랑게르한스섬의 오후' 두 권을 하나로 묶었다. 하루키가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일들을 안자이 미즈마루의 컬러풀한 그림을 곁들여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여기 실린 글들을 읽어보면 그가 좋아한 음악..

2013.02.05

8월의 크리스마스 (블루레이)

이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죽음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명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알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는 죽음을 기다리는 한 남자의 평온한 일상을 그렸다. 그의 일상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옛 추억을 그리워하며 아련한 사랑을 한다. 다만 죽음이 예정돼 있다는 것만 다를 뿐. 그래서 그의 일상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마루에 앉아서 발톱을 깎고, 가족과 수박을 먹으며 마당에 씨를 뱉어내고 연인과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 평범하고 소소한 우리네 일상이 한없는 무게감으로 다가 온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을 이토록 큰 의미 부여와 함께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