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가브리엘 번 7

레닌그라드 900일간의 전쟁

제 2차 세계대전사에 있어서 독소전은 전쟁의 향배를 갈랐다. 잇따라 서유럽 국가를 정복하며 승승장구하던 독일이 구 소련을 침공하면서 동과 서 양쪽에서 전쟁을 벌여야했고, 결과적으로 자원이 한정된 상태에서 전력의 배분은 독일의 패배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양수겹장의 악수를 둔 셈이다. 독일은 소련을 침공하면서 또다시 전력을 두 개로 나누었다. 모스크바 등을 겨냥한 주공과 함께 레닌그라드 방면의 보조 공격을 통해 소련군을 양분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독일이 레닌그라드, 즉 지금의 상트페테르스부르그를 노린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소련의 북서 항구를 일제히 봉쇄해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이었고, 반대로 독일은 이를 통해 원활하게 보급을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1941년 9월부터 일어난 레닌그라드 ..

킴 베신저의 쿨 월드

랄프 박시 감독의 '쿨 월드'(Cool World, 1992년)는 국내 DVD 타이틀 제목이 '킴 베신저의 쿨 월드'이다. 제작사에서 아무래도 가장 인지도 있고, '나인 하프 위크' 이후 섹시 심벌로 꼽히는 킴 베신저를 내세워야 잘 팔릴 것이라고 본 모양이다. 그렇다고 킴 베신저가 스타의 전부는 아니다. 브래드 피트, 가브리엘 번 등 쟁쟁한 스타들이 아주 젊은 모습으로 줄줄이 나오지만 당시로서는 킴 베신저 만큼 유명 스타는 아니었다. 이 영화는 독특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주인공이 만화영화 속으로 빨려들어가 현실과 만화 사이를 오가며 모험을 벌이는 내용. 당시로서는 기발하고 독특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1988년에 나온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

아이언 마스크 (블루레이)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는 숱한 영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뒤마는 삼총사 이야기를 '삼총사' '20년 후' '브라줄론 자작' 등 총 3부작으로 썼다. 랜달 월리스 감독의 '아이언 마스크'(The Man In The Iron Mask, 1998년)는 3부작 가운데 3번째인 '브라줄론 자작'을 토대로 만들었다. 3부는 우리가 흔히 철가면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다. 평생 무쇠로 만든 가면을 쓴 채 감옥에 갇혀 있는 사나이를 삼총사가 구출하면서 벌어지는 모험담이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왕 시절 감옥에 갇혔던 철가면은 실존 인물이다. 1679년 이탈리아 토리노 근처 피네롤로 감옥에 수감됐던 철가면은 1698년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으로 옮긴 뒤 5년 만에 죽어 생 폴 교구에 묻혔다. 루이 14세는 죽은 철가..

유주얼 서스펙트

브라이언 싱어 감독을 유명하게 만든 수작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 1995년)는 관객의 주의력을 테스트하는 영화다. 의문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용의자의 증언을 토대로 진범을 밝히는 과정은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그만큼 크리스토퍼 맥쿼리가 쓴 스토리가 탄탄했다. 특히 막판 반전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기발함이 돋보인다. 이야기만 훌륭한게 아니라 영화적 구성 또한 뛰어나다. 이 작품은 마치 문학작품을 그대로 옮긴 것처럼 유난히 대사가 많은데, 쉼없이 떠드는 대사의 홍수 속에 문득 문득 찾아드는 침묵이 일종의 챕터 구분 역할을 하며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캐릭터도 잘 살아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같은 가브리엘 번을 비롯해 약자처럼 보이는 케빈 스페..

밀러스 크로싱 (블루레이)

바람에 낙엽이 날리는 스산한 가을이면 딱 어울리는 영화가 있다. 바로 '밀러스 크로싱'이다. 언제나 악동같은 코엔형제가 마초들을 위해 만든 영화가 '밀러스 크로싱'(Miller's Crossing, 1990년)이다. 의리와 조직을 강조하며, 세상만사 주먹으로 해결하는 남자들이 모여 돈과 여인을 위해 피를 튀기는 얘기다. 하지만 무턱대고 총질을 해대는 홍콩 느와르와 달리 주인공은 박쥐처럼 아일랜드 갱과 이탈리아 마피아 사이를 오가며 교묘한 간계로 두 조직을 속이는 두뇌 플레이를 펼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요짐보'나 '라스트맨 스탠딩'과 닮았다. 나름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해지는 사내의 모습에서 남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뚝심이 배어 나온다. 그러면서도 스산하게 울리는 선율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