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고현정 5

북촌방향

이 영화, 참 기이하다. 어디서나 봄직한 일상의 소소함 속에 생각할 거리를 던졌던 게 그동안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라면 그의 12번째 영화인 '북촌방향'(2011년)은 전작들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조각그림처럼 흩어진 평이한 삶의 단면들이 같은 점이라면, 뒤틀린 시공간은 다른 점이다. 영화 속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 힘들다. 선배(김상중)를 만나기 위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 영화감독(유준상)이 북촌이라는 동네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 부대끼는 내용은 언뜻보면 하루 동안 이야기 같으면서 며칠 사이 벌어진 일 같기도 하다. 그만큼 영화 속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시간의 배열도 혼란스러워 인과관계도 분명치 않다. 즉, 귀퉁이가 닳아서 두루뭉실한 퍼즐 조각처럼 어떤 ..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감독의 9번째 작품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년)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영화감독이 자신의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황당한 사건들을 다뤘다. 여전히 홍 감독 특유의 돌발적인 사건과 뜻밖의 대사들이 황당한 웃음을 자아낸다. 사람들이 일상성이라고 부르는 홍 감독 특유의 전매특허같은 무의미한 인서트 컷들과 무신경한 프레임, 대충 툭툭 끊어놓은 듯한 거친 편집 등도 변함없다. 마치 사람들이 일상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망막에 마구잡이로 걸리는 의도하지 않은 영상들이다. 공들여 미장센느를 구축한 작품들과 비교하면 무성의해 보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영상일 수 있다. 이제는 그런 홍 감독 특유의 일상성이 편하게 다가온다. 남다른 의미부여 없이 편하게 보이는 대로 보면 되기 때문..

여배우들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2009년)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 보는 토크쇼 같다.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등 유명 여배우들 6명이 한꺼번에 출연하는 흔치 않은 영화이기에 호기심을 갖고 봤으나 어찌나 카메라를 흔들어 대는 지 멀미가 날 지경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여배우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과도한 들고 찍기를 한 탓이다. 하지만 이는 감독의 자가당착일 뿐이다. 카메라용 모니터나 편집실의 작은 모니터로 보면 들고 찍기 화면이 그럴 듯 해 보일 지 모르지만 극장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키워 놓으면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탄 것처럼 화면이 춤을 춘다. 배우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바짝 당겨 찍은 화면이 어찌나 심하게 일렁이는 지, '태극기 휘날리며'의 초반 장면을 보..

영화 2009.12.12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래전 홍상수 감독의 어떤 작품 언론시사회를 다녀온 뒤 호된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온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는 그의 끝없는 자기 복제가 지나쳤다고 봤기 때문이다. 적어도 돈을 받고 상영하는 상업 영화 감독이라면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작품을 다시 본다면 그렇게 비판하지 않을 것 같다. 어느덧 자기 복제는 그의 색깔이 돼버렸다. 이제는 망하든 흥하든, 우디 앨런처럼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의 9번째 작품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자기 복제는 여전하다. 심지어 김태우, 고현정 등 그의 전작들에서 등장한 배우들도 계속 출연한다. 이 작품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영화감독이 자신의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벌어지..

영화 2009.05.17

해변의 여인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황당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기-승-전-결의 체계를 갖추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일반적인 드라마투르기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갑자기 시작해서 느닷없이 끝난다. 어느 시점을 사건의 시작 또는 절정, 끝이라고 집어내기 힘들다. 그냥 사람들의 하루를 툭 잘라내서 필름에 집어넣은 것처럼 심상한 삶을 보여준다. 이를 혹자는 '일상의 힘'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심드렁한 일상을 영상으로 붙잡을 수 있는 홍 감독의 특기라고 본다. 그의 일곱번 째 작품 '해변의 여인'(2006년)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작품 구상을 위해 서해안으로 떠난 감독이 그곳에서 어느 여인과 겪게되는 일상을 담고 있다. 그 속에서 굳이 의미를 찾자면 덧없는 욕망과 자신에 탐닉하는 이기적인 삶이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