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공형진 9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년)는 전작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예상외로 크게 성공하자 제작사인 황기성 사단에서 서둘러 만든 속편이다. 전작의 인기를 업고 가기 위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두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감독은 전작의 각본을 쓴 김성홍이 맡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미연, 김보성이 주연을 맡았고 지금은 유명한 배우들이 된 공형진, 이범수, 최진영 등이 신인으로 출연했다. 음악도 전작처럼 산울림의 김창완이 맡아 주제가를 불렀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전작만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서울의 경우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5만3,000명의 관객이 들었다. 전작이 16만 명이 관람해 대박을 쳤으니 그에 비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당시 10만 명 관람이 ..

파이란 (블루레이)

최민식의 연기력이 빛나는 영화 '파이란'(2001년)은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단편 소설 '러브레터'를 각색한 작품이다. 별 볼일 없는 아사다 지로의 원작을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화로 바꿔놓은 것은 송해성 감독의 돋보이는 연출력이다. 송 감독은 멀리서 지켜보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카메라를 통해 인물들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다. 이 같은 카메라의 움직임이 지나친 감정과잉으로 치닫지 않고 절제되며 깔끔한 영상을 연출해 극 중 인물들에게 오히려 빠져들게 만든다. 특히 조폭 사무실 창 너머로 거친 조폭들의 움직임을 잡은 영상이나 파이란이 인천 차이나타운에 처음 도착한 장면을 롱샷으로 잡은 장면 등은 보는 이를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다. 더불어 강원도 바닷가 장면 등 화면을 꽉 채우는 서정적인 영상이 돋..

박하사탕 (블루레이)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후, 철로 위에 올라 선 설경구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며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의 인상이 어찌나 강렬하던 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년) 하면 우선 떠오른다. '초록 물고기'로 감독 데뷔한 이창동 감독이 두 번째로 만든 이 영화는 설경구가 연기한 영호라는 인물이 겪은 20년을 다루고 있다. 1979년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1999년까지 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 한 인물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를 위해 각본을 직접 쓴 이 감독은 영호의 죽음부터 과거로 시간을 되짚어 올라가는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했다.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는 방식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

방자전 (블루레이)

'음란서생' '방자전'으로 이어지는 김대우 감독 작품의 묘미는 기발한 비틀기에 있다. 점잖은 양반들을 음란 소설 작가로 둔갑시킨 '음란서생'에 이어 '방자전'(2010년)에서는 진정한 로맨스의 주인공을 하인인 방자로 바꿔 놓았다. 헛웃음 나올 법한 황당한 설정이지만 그럴 법 하다는 개연성을 부여한 것은 탄탄한 구성이다. 양반이나 하인이나 똑같은 사람인데 어찌 미인을 보고 느끼는 사랑이 다를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결국 이도령과 방자, 춘향과 향단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고도의 심리 로맨스가 돼버렸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은 김대우 감독의 비틀기다. 이도령은 유희 같은 사랑과 출세를 위해 여인을 이용하는 양반으로, 춘향 역시 팔자를 고쳐보기 위해 남자를 노리는 여인네로 나온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감독의 9번째 작품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년)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영화감독이 자신의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황당한 사건들을 다뤘다. 여전히 홍 감독 특유의 돌발적인 사건과 뜻밖의 대사들이 황당한 웃음을 자아낸다. 사람들이 일상성이라고 부르는 홍 감독 특유의 전매특허같은 무의미한 인서트 컷들과 무신경한 프레임, 대충 툭툭 끊어놓은 듯한 거친 편집 등도 변함없다. 마치 사람들이 일상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망막에 마구잡이로 걸리는 의도하지 않은 영상들이다. 공들여 미장센느를 구축한 작품들과 비교하면 무성의해 보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영상일 수 있다. 이제는 그런 홍 감독 특유의 일상성이 편하게 다가온다. 남다른 의미부여 없이 편하게 보이는 대로 보면 되기 때문..